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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문화찾기/천소영/한국문화사/고유어 어원에 담긴 한국문화

우리는 자신이 지닌 가치관이 드러나고 생각하는 대로 말하며, 말하는 대로 행동하고, 그 행동들은 모여서 우리의 인생을 만든다. 또한 언어의 순서와 표현에 따라 나라마다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한다. 어떤 나라에서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알기위해서는 그 나라가 가지고 있는 동의어 수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뭔가를 중요하게 여기면 여길수록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단어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처럼 언어와 우리의 사고방식 및 가치관은 상당한 연관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 같다. 언어만으로 한 국가의 국민성을 완전히 판단할 수는 없지만, 언어를 통해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는 것처럼, 말과 언어가 우리 개별과 국가의 정체성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말의 문화 책에서 나온 것처럼, 문화라는 개념 속에 언어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언어는 무엇보다 문화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첫 번째 요소다. 언어를 빼놓고는 문화를 운위할 수 없을 정도로 한 언어 속에는 그 언어를 만들어 낸 사람들의 생각과 느낌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의 정서나 사고방식, 의식구조 등이 용해되어 있다고 한다. 언어가 문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한민족이 쓰는 한국어에는 한국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말은 인간의 생각을 담는 그릇이자, 느낌과 기분을 가시적으로 그려 내는 그림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한국인은 생각을 담는 그릇인 고유의 말이 있을 뿐 아니라 그 말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 곧 고유문자로서의 한글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맙고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그러나 요즘 빠르게 문화가 변하는 시대에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이 있다. 우리말의 파괴는 정말 막아야 하는 것인가. 시도 때도 없이 줄임말을 사용하고 영어와 섞어서 사용하고 때로는 완전히 새로운 제3의 언어를 만들어 사용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물론 계층별 은어는 과도하게 쓰면 문장이 이해하기 어렵고 쓸데없이 외래어가 많이 들어가 있어 읽는 것 자체에도 거부감이 들며, 소통을 어렵게 하며 불쾌감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러나 좋게 보면 한글의 장점을 살리고, 언어생활을 풍성하게 만든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말이 생기고 사라지는 건 원래 언어의 숙명이기도 하다, 과거의 문화가 바뀌면서 지금까지 수많은 어휘들이 삭제되고 생기고 의미가 확대되고 축소되고 전이되면서 조상의 삶의 태도와 생활을 보여주었던 것처럼, 지금도 우리 삶의 흔적이 새겨지고 있다고 볼 수 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변화에 대하여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우리말 파괴에 심각성을 지적하는 것의 원인은 공감의 차이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성적으로 우리말 파괴에 대해 고민을 한 것이 아닌 감성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언어 특히 한국말의 신비로움을 이용해 잠깐의 재미 또는 잠깐의 흥밋거리를 찾고 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걱정이 되는 것은 과거에는 지금처럼 이렇게 심각한 외래어 남발과 한국어의 변형이 없었다는 것이다. 언어가 우리의 가치관과 생활에도 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데, 이렇게 말을 변형해서 하는 것을 계속 내버려 두는 것이 괜찮을까싶다. 단순히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이상하게 바뀌어버린 우리의 언어습관이 세대 간의 소통을 단절시키고 나중에는 부정적인 행동과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미칠까봐 두려운 것이다. 우리가 진정 우리말 파괴에 대한 이런 심각성을 인식하려면 이런 흥밋거리에 가려진 우리말 파괴에 대해 진지하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어는 늘 변하기 마련이고. 그 변화의 시도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늘 있었다. 이게 기존의 것과 다르다 보니까 파괴로 느껴지기 쉽지만, 완전히 배척하기 보다는 어느 정도 한계를 설정하면서 하나의 문화적 형태로 보고 새롭게 변화한 것들을 받아들이고 발전시키기 위한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언어는 그 문화에 속한 사람을 자유롭게도 하고 구속하게도 하는 영향력을 가지는 만큼, 우리가 사회를 영위하고 문화인 생활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도구인 언어를 소중하게 여기고 활용하는 자세를 갖추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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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의학의 탄생/미셀푸코/이매진/의학적 시선의 고고학

의학적 시대적 단절을 추적한 의학사 연구에 관한 책이다. 인식론에 대한 철학적 개념도 거의 전무하고, 의학적 지식도 사실상 전무한 나에게는 이해하기도 힘들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한 문장을 읽는데도 이해가 안 되어 계속 반복해서 보느라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고고학이 무엇인지, 담화분석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설명이 안 되어있어서 깊은 의미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고, 관심분야도 아니고 아는 내용이 없다보니 단어 자체의 의미만 이해하며 읽으려고 했기에 정말 솔직하게 책의 절반이라도 말하고자 한 바를 잘 이해했는지 걱정된다. 이 책은 다른 책들과는 다르게 임상의학의 탄생을 언어적 역사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 같았다. 독특하게도 의학이 새로운 관찰기법이나 기술의 발전을 통한 병리적 원인을 밝혀내서 생긴 것이 아니라, 보이고 말해지는 것에 의한 언어적 관계가 밝혀지면서 인간의 몸을 이에 접목시키기 시작했기 때문에 임상의학이 탄생했다고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의학이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과 그것을 드러내는 방법이 문제가 아니라 대상을 인지하는 주체의 경험의 수준이 달라진 것이라고 주장하며 보이는 것을 강조하며 말하고 있다. 의학 자체로서 임상의학이 발전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언어체계가 생기고 적용되면서 의학적 지식을 교환할 수 있는 의사소통이 생기고 이로써 임상의학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이로써 점차 임상의학은 보이는 질병을 가진 신체에서, 시체 해부를 통해 보이지 않는 질병을 가진 신체로 시선을 옮긴 것이다. 이는 언어의 사회성에 의해 우리가 일대일 대응을 시켜가며 무엇을 정의하고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환자와 의사가 대화를 이어나가고 교육과 연구로도 지식의 획득이 가능해졌다는 의미 같았다. 가끔 생활하다가 우리에게 언어의 사회성이 없으면 어떻게 우리가 같은 대상으로 대화를 하고 의미를 주고받을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 적이 있었다. 아마 푸코도 이러한 생각으로부터 이런 주장을 내세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처음 읽을 때는 물론 언어로 인한 지식교환도 기본적으로 중요하다고 동의는 하지만 이게 과연 임상의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 근본적 원인이 될까 의문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의문점은 해결되었다. 많이 경험한다고 반드시 지혜로운 것은 아니듯이, 우리의 인식 과정을 거쳐야 무엇이든 제대로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이다. 관찰하고 말하고 인식하면서 상관관계를 밝히게 되고 이를 통해 의학만이 아닌 어떤 분과는 시작할 수 있는 기초적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었다. 특히 의학적 분야를 통해 설명해서 그런 것이지 아마 푸코는 모든 학문의 탄생은 언어체계로부터 탄생했다고 철학적으로 주장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지 조심스럽게 생각해보았다. 이러한 언어체계로 인해 새로운 공간화로 옮겨가고, 부자들이 다른 사람의 질병을 이해하는데 돈을 내고 투자를 하면서, 가난한 자에게는 질병의 고통을 덜어주지만 부자들에게는 안락함을 보장하기 위한 지식을 만드는 계기로 발전하면서 1차 공간화, 2차 공간화, 3차 공간화로 점차 발전되었다고 한다. 책의 초반에 임상의학의 탄생이 서로 다른 계기에서 출발한 의도로 인한 것이라는 설명이 도대체 이해가 안 갔는데, 억지로 읽어가며 책의 후반부에 와서야 임상의학의 탄생을 단순히 과학적이고 정치적이며 경제적인 이데올로기에만 연결시켜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의학이 건강보다는 정상의 문제에 관심을 나타낼 때, 비슷한 시기에 과학에서도 생물학적 차원을 넘어서 건강과 죽음을 구분하는 지식 영역의 확장이 있었기에, 의사는 단순히 환자의 병을 치료하는 사람이 아니라 환자의 신체를 의학적 권력과 시선의 대상으로 정상인과 환자를 가르는 언어로 지식으로 작동시키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또한 병원구조개편, 의료행위와 교육에 관한 법률 제정들을 통해 사회 경제적 요인이 임상의학이라는 새로운 인식의 장을 의학지식에 부여하게 되었는지 생각해보면서, 일반적이지 않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아주 근본적인 인식론적 사건들도 다시 한 번 새롭게 고려해봐야 하는 것이었다. 아마 기존의 철학 책들과 다르게 의학도를 겨냥하여 기술하면서, 기능적이고 기술적인 지식에 갇혀 있는 의대생들에게 지식에 대한 반성적 사고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철학과 같은 인문학적인 요소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이공계와 메디컬 학생들에게 분과학문의 통합적 중요성에 대한 생각을 한 번쯤 할 수 있게끔 도와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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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과 인류의 역사/윌리엄H.맥닐/허정/한울

이 책은 전염병을 역사 변화의 가장 큰 원인으로 주장하면서 질병과 역사의 흥망성쇠를 최대한 연관 지으려고 노력한 것 같다. 로마 제국 말년의 몰락, 인도와 그리스의 문명 변화, 콜럼버스의 신대륙 개척과 같은 중요한 사건들에 있어 그것이 일어나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다양한 전염병을 핵심으로 두고 있었다. 다양한 사례 분석과 함께 많은 주장과 근거를 내세우면서 새로운 역사 해석 방식을 제공했다. 의학사 시간에도 들었던 것처럼, 전염병의 역사는 인류의 문명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한다. 무리생활을 하고 정착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온 서로 다른 인종간의 교류가 발생하자 주변 환경 역시 비위생적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문명과 함께 시작된 전염병은 우리 역사와 늘 함께 해왔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병원균의 요소를 의미한 미시기생과, 전쟁과 억압 그리고 수탈 등의 인위적인 요소를 의미한 거시 기생이라는 표현으로,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이 변화를 겪어왔다고 설명하는 것이 나름대로 독특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리스의 전염병, 고대인도의 전염병 방어, 유럽의 페스트, 대항해시대의 정복과 번영 같은 주장을 보면 전염병에 대한 이론으로 한 나라의 비약적 발전과 실패를 살펴볼 수 있었다.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많이 모자랐고, 책에서 설명하는 내용들은 나에게 거의 처음 접하는 내용이 다수였지만, 책을 읽으면서 약간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다. 한 가지를 설명하기 위해 먼 시기까지 억지로 연관시킨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오로지 질병으로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 무리한 주장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실제 전염병만이 아닌, 인간 사회에서 벌어지는 정치 경제적 문제까지 '거시 기생'이라는 표현으로 전염병과 역사를 해석하려는 태도로 자신의 이론을 관철하기 위해 기술한 점은 이 책의 한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저자의 추측으로 단정되는 부분이 눈에 띄게 있었기에 아직 아는 것이 없는 나의 입장에서 얼마나 이러한 정보를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되었고, 그저 전문적으로 연구했던 학자의 역사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만 보고 넘겼다. 우리가 흔히 농업을 시작한 시기이래로 식단이 훨씬 더 풍요로워 짐에 따라 건강이 좋아지고 평균 수명 또한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수렵 채집 시기보다 칼로리는 많이 섭취할 수 있었지만 탄수화물 위주의 식단으로 인해 영양분은 이전보다 못해졌고 이에 따라 우리 몸의 저항력은 약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인구의 밀집으로 인해 인간은 각종 질병에 걸리기 쉬운 환경 속으로 접어들며 야생 동물의 가축화는 인수공통감명병의 통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전염병과 싸운 의학의 발전으로 인간사회는 윤택해지기도 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새로운 질병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며 끊임없이 연구하고 밝혀내야하는 처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하나를 해결하면 다양한 문제를 연쇄적으로 해결하고 발전시키며 우리 삶을 윤택하게 돕기도 하지만 이전에는 겪지 않았던 새로운 운명을 받아들이고 움직이는 인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를 극복해보려고 노력해오고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었다. 물론 과거보다는 평균수명은 늘어났고, 생물학적으로 볼 때에 우리 인간의 최대 기대 수명은 120살이라고 한다. 하지만 오래도 살고 건강하게 살려는 것이 목표이지만 그것이 그리 쉽지는 않는 것 같다. 평균수명은 늘어났지만 우리는 과거 보다 건강하다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건강과 평균 수명은 단순한 비례 관계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느껴졌다. 그러면 우리가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은 계속 쏟아지고 닥쳐오는 질병을 없애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의 후반을 읽으면서 한편으론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도 들었다.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과거의 실수와 잘못된 역사를 벗어나 다른 어떤 새롭고 더 나은 환경과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했다. 또한 과거의 불치병들은 정복해나가면서 또 새로운 종류의 질병이 우리에게 찾아오지 않을까 한다. 얼마 전에 게임 중독을 하나의 질병으로 보기로 결정한 것처럼 이제는 길어진 수명으로 인한 자살문제와 영양과다로 인한 비만이 다음 세기의 새로운 과제로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변화는 우리에게 많은 기회를 주기도 하지만,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변화로 인해 두려움도 동시에 생기게 된다. 우리는 앞서 겪은 역사를 통해 새롭게 다가올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명확한 목표의식과 주의사항을 예측하고 대비해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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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학문의 길/조동일/지식산업사

우리학문의 길이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는 그래, 우리학문이 발전되어야지라는 그냥 막연한 생각만 있었고, 학문이 왜 발전되어야 하는지 우리학문은 무엇인지 지금까지 살면서 한번 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학문의 필요성과 목적 존재이유를 책과 기사로만 읽고 간접적으로 접해보기만 했기에,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완벽하게 받아들이기는 힘들었으나, 미약하게나마 의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처럼 교육의 위기가 생긴 이유는 학문의 위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자기들 제멋대로 교육정책을 바꾸는 것은 우선 정권유지를 위한 개편일 것이지만, 교육 받는 수험생과 학생들은 교육을 우습게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혐오스럽게만 느껴질 뿐이다. 이와 같은 문제가 생기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교육의 근본인 학문을 죽이고, 교육을 잘해야 한다고 하니 교육개혁의 목적의식을 상실해서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생으로서 대학이 지금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한번 생각해 보았다. 가장 우선은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학생들만 가르치고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 대학의 문턱을 낮추고자 입시 제도를 마음대로 바꾸고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역겨운 인간들의 어리석은 사고방식으로 인해, 대학이 학문을 하는 교육이라는 불변의 원칙을 흐리게 된 것이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대학에서 학문을 고급 지식으로 바꾸는 능력이 중요해진 것이지, 무자격자가 어려움 없이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하고 취직하기 위한 썩은 동아줄이 아니다. 또한 대학에서, 도서 이용에 관해서는 국가가 베푸는 혜택을 누리면서 소속 대학의 범위를 넘어서 연구하고 경쟁할 수 있도록 행정적 마련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교수님께서도 다른 대학에 위치한 책을 보기 위해 갔으나 해당학교 소속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당했고, 한국과 일본의 고서를 포함한 서적을 다루는 가치관 차이도 충분하게 느낄 수 있었다는 사실을 들은 적이 있다. 교수가 소속 대학의 범위를 넘어서서 경쟁 하도록 하는 것이, 기존 재원과 인력을 활용하는 범위 안에서 경쟁하게 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또한 효과가 잘 나타날 수 있는 전략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학문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필수적인 일은 대학원생을 포함한 모든 학생들과 교수들에게 학문과 이론의 실용적 가치를 입증하고 그 의미를 깨우쳐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이론을 창조해 세계 학문의 새로운 길을 열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편법이나 임기응변이 아닌 철저한 논의를 바탕으로 한 대책마련이 필요하다. 반드시 선진국을 따라가야 한다는 주장은 제대로 된 발전에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 시대적, 지리적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선진국이 했으니 똑같이 본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그저 후진국의 창의성 고려 없는 특유의 방책을 반복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것을 고집하고 머물러 있다면 결국 우리는 그러한 학문과 방법을 선택하지 않게 될 것이고, 역사책의 작은 참고 사항으로 자리 잡아 우리 인식에서 서서히 잊혀버릴지도 모른다. 이 책은 주로 문학적인 내용에 중점을 두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이 분야만 한정적으로 제한되는 내용이 아니라 우리나라 학문 전체에 포괄적으로 적용되어야하는 하나의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문을 해서 얻는 결과가 이론이라고 한다. 어떤 실증적인 학문이라도 논증한 사실을 종합해서 이론적인 일반화를 이룩하는 데까지 이르러야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론을 불신하고 사실 자체에 머무르고자 하고,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대상만 다루고 일반화를 하지 않으려 한다면 학문을 한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아직 검증되지 않은 막연한 가설이 이론은 아니다. 가설을 논리적으로 검증하고 사실에 의해 입증해야 비로소 이론이 된다. 따라서 나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자신의 전문분야의 관점으로 연구하고 성과를 모으고, 같이 비판하고, 다시 다듬으면서 학문과 이론의 발전을 그릴 수 있다고 본다. 혼자 경험이 많다고 학문을 잘하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비판 과정을 통해 진실 탐구 의지를 기르고 정확한 탐구 방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학문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닌 토론과 대화를 통해 완성해나가며, 이를 통해 지식과 지혜의 생산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대학에서 이론 창조를 사명으로 하고, 강의 와 연구의 불일치 문제들을 해결하고, 학생들의 학문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게 된다면, 비로소 이 책에 나온 우리 이론 창조의 세계사적 사명을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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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는 어떻게 문명을 구했나/존퀘이조/황상익/메디치미디어/세상을 바꾼 의학의 10대 발견

 

 

한 가지 발견을 하기까지는 수많은 실패와 좌절이 동반한다. 그리고 이런 발명 이후에는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정확하게 상상하기란 힘들다. 페니실린처럼 수많은 발견들은 다양한 우연한 기회와 행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나 역시 언제나 발명을 위해 불편을 생각하고 고민의 시간을 보내곤 하는데, 내 발명과 생각이 후에 어떤 혁신으로 이어질지는 감히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 나를 더 흥미롭게 만들기도 한다. 새로운 발명을 비웃고 비아냥거리는 자는 그저 새롭게 다가오는 변화가 두려울 뿐이다. 이런 사람들은 새 시대를 받아들일 용기가 있는 자들을 절대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 든 생각이 있다. 우선 주변의 의심과 조롱을 버티고 나의 신념을 끝까지 지켜나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멘델은 수십 년간 자신의 업적을 무시하고 비난하는데도 결국 흔들리지 않고 이겨냈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잠시 과대를 하면서도 몇몇의 근거가 전혀 없는 낭설과 비난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나라면 과연 그렇게 긴 시간동안 주변의 비난과 불신에도 연구를 멈추지 않고 내가 목표한 바를 얻어낼 수 있을까. 특히 폐쇄적인 집단 안에서는 남의 공로를 인정하기 싫어하고 자신의 부족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수많은 의심과 조롱을 만들어 내곤 했다. 하지만 위대한 사람들은 이러한 부수적인 역경들을 잘 이겨내고 자신이 원하는 결실을 얻는 기쁨을 맛보았던 것처럼, 나를 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주위에 흔들리지 않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차근차근 만들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으로 든 의문은 나는 과연 기존의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질병이 주로 미아즈마를 통해서 전달된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세탁되지 않은 옷을 전달받거나, 오염된 식수를 먹어서도 병이 옮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새롭게 질병의 원인을 추론해낸 것을 보았다. 이를 통해 기존의 관념을 벗어나는 것은 정말 어렵지만, 이러한 과정이 있어야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낼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언제나 일반적인 사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고자 노력하고, 때로는 엉뚱하게 사고의 전환을 시도해 보는 경험이 나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지막 의문은 콜레라의 시대에 채드윅과 스노우가 해낸 일처럼 시대적 상황의 위험을 무릅쓰고도 연구 지속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한의대에 들어오기 전부터 나는 한의사가 되어 신종플루나 메르스 같은 전염병에 맞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치료를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해 보았다. 차라리 조금 더 안전한 곳에 남아 더 많은 사람들을 오래도록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겠다고 자답했었다. 아직까지도 내 생명을 희생해가면서까지 환자를 치료해야한다는 다짐에 이르지는 못했고, 그저 그러한 일을 했던 이전의 의사들에게 존경을 표할 뿐이다. 인생을 살면서 매순간 우리의 선택은 삶을 성공으로 이끌고 사회에 긍정적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어린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청진기를 발명하게 된 것처럼 다양한 사례들을 보면 그러한 기회에는 많은 우연과 운이 작용했다. 그 기회를 쟁취한 사람들은 모두 운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업과 의료도 마찬가지로 나에게 다가온 행운을 거머쥘 수 있는 좋은 감각을 지니기 위해 많이 배우고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혁신이란 순수한 노력만이 아닌, 독특하고 명백한 것에 주의를 기울여 새로운 발견을 해낸 것이기 때문이다. 의료행위를 엄격한 기준을 지닌 전문기술인으로 격상시킨 히포크라테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앞으로 의사가 되어 갖춰야할 태도도 어렴풋하게 접할 수 있었다. 지금 잘 갖춰놓은 나의 가치관과 인성을 더 갈고 닦고, 더 많이 더 열심히 배우는 것은 필수적이자 기본적인 것이다. 여기에 표정에 적절한 신중함과 무게감을 지니고 적절한 기쁨을 조절해내는 것, 습의규격에 나온 환자의 생업과 경제수준을 고려하고 감사의 빚을 기억하게만 하는 등의 사소하지만 환자를 배려하고 의사로서 신뢰와 믿음을 얻을 수 있는 중요한 능력도 필요함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위대한 의학적 발견은 단순히 많은 사람을 구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행복한 삶을 주고, 문명을 구하고 궁극적으로 생각과 인식을 바꿔 세상을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피와 땀이 서려 있는 수많은 노력들이 빚어내려 했던 궁극적 목적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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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역사와 신화/자크브로스/양영란/갈라파고스

식물의 모든 것에 대해서 태초부터 지금까지 자세하게 보여주는 이 책은 식물에 관련된 여러 신화에 대해 소개하고, 식물이 어디에서 어떻게 쓰였는지도 제시하고 있다. 식물에 대해 다룬다기보다, 식물에 대한 인식의 역사를 다룬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문화적 프리즘을 통해 바라본 식물의 역사로 식물 자체만을 두고 보았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많은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었고, 식물을 이런 관점으로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신선했다. 식물이 없다면 어떤 음식물도, 어떤 동물도, 어떤 생명체도 존재할 수 없다는 주장을 이해하면서, 최초의 지구 생명체라고 할 수 있는 조류의 탄생과 식물의 진화, 생명체를 가능하게 한 광합성 작용, 식물의 교묘한 생존 전력과 뛰어난 적응력, 식물이 지닌 숨겨진 정중동 세계를 볼 수 있었다. 자크 브로스는 수목학과 신화학을 아우르는 풍부한 지식과 깊은 통찰력을 바탕으로 선사시대 이래 인간과 식물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알려준다. 태고 적부터 인간은 탄생과 죽음, 부활을 반복하는 식물에 대해 경외심을 지녔다. 하지만 문명과 과학의 발달로 말미암아 인간은 식물의 신성한 의미를 잊어버렸으며, 그 결과 인간과 식물의 조화가 깨어지고, 인류는 각종 환경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제야 식물이야말로 인간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또한 예전부터 내려오던 식물의 뛰어난 능력에 대한 믿음은 엄정한 과학주의가 판치던 시기에 미신으로 치부되어 무시되었지만 현대 과학에 의해 다시금 입증되기도 했다. 이 책은 약간은 지루했지만, 식물에 얽힌 종교적, 신화적 의미를 통해 인간과 식물이 함께해온 기나긴 역사와 식물의 능력을 접하면서, 식물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시야를 얻을 수 있었고, 식물에 대한 사랑과 공경의 자세를 곳곳에서 느끼고 식물과 인간은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다. '인간의 육체가 지닌 궁극적인 목적은 식물세계의 번성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이 책의 에너지 효율 측면이나 여러 가지 환경에의 적응 측면에서 동물보다 식물이 월등하게 우수한 생명체라는 주장은 식물이 지구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뒷받침해준다. 식물도 생존경쟁이 치열하고 개체마다의 생존의 법칙을 갖고 있으며 그 법칙을 발전시켜나가기도 한다. 심지어 식물은 그들의 번성에 동물은 물론, 인간을 활용하기도 한다. 식물이 인간의 다양한 욕구를 교묘하게 파고들어 자신의 생존과 번식 욕구를 충족해 왔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운 깨달음이었다. 과연 인간이 먹이사슬의 정점에 있는 최종소비자가 맞는지 고민해보고 새로운 관점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잠시 입장을 바꾸어 식물의 위치에서 먹이사슬을 그린다면 당연히 그 정점에는 식물이 자리할 것이다. 결국 지구상의 먹이사슬은 단선적이 아니라 순환적인 구조로 상호 연결되어 있어서, 지구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식물과 동물과 인간은 따로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 연결된 하나의 존재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 현대인의 식물에 대한 이해는 식물을 자원으로 이용하는 데 있어서 그 깊이는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그 폭은 오히려 훨씬 줄어들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옛날 원시인들이 어떻게 차, 커피, 카카오, 콜라열매, 파라과이차 등 카페인을 함유하고 있는 다섯 가지 식물을 찾아낼 수 있었을까? 또 카페인 성분이 피로를 몰아낸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아냈을까? 서구의 근대 또는 현대 문명이 이해하지 못했던, 우리가 원시인이라고 부르는 선조들의 식물에 대한 광범위하고 기초적이지만 상세한 지혜와 지식에 대한 탐구는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그들은 어떻게 우리가 자랑하는 현대 문명이 그 많은 실험과 연구 끝에 간신히 알아낸 식물들에 관한 지식을 알아내고 활용할 수 있었을까. 현대인들이 상실한 식물들과 사람들 간의 교감 능력이 그 답일 것이다. 식물은 생명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열쇠이기도 한만큼, 식물을 연구하여 식물과 무생물 생물 나아가 인간까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식물과 동물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고 무관심했던, 식물에 대한 정보와 신화를 읽으면서. 생명과 식물을 사랑하고 환경에 대한 인간의 경각심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있다는 점은 이 책에 덧붙일 수 있는 소중한 미덕인 것 같다. 우리의 고정 관념과 상식은 식물과 동물과 인간을 서로 전혀 다른 차원에서 다루면서 분리하지만, 실제 적지 않은 실험과 사례는 우리가 가진 상식과 많이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인간의 오만함과 자연에 대한 파괴행위로 더 이상 지구의 생명체를 망가뜨리지 않도록 모두가 성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살아남기를, 제대로 살아갈 수 있기를 꿈꾸려면 있는 그대로의 생명,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생명 그대로를 사랑하고, 적어도 존중할 수는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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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배신/호레이스F저드슨/이한음/전파과학사

책에서 언급한 수많은 사기 행각들을 읽고, 과거 2005년 황우석 줄기세포 사건이 생각났다. 황우석의 연구비 횡령이나 여성 연구원의 난자를 활용한 연구윤리문제를 제외하고, 부하 연구원이 조작을 하게 된 이유는 수많은 관심이 쏠리고 그에 따라 성과 재촉함에 따른 압박감 때문이었다. 지금도 코오롱의 세계최초 유전자 치료제 인보사가 미국시장 진출을 앞두고 주성분 세포가 뒤바뀐 사실이 논란되고, 이 약을 개발하면서 사실을 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같이 과학에서의 사기는 주변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었다. 미래가 촉망되었던 유명 과학자들이라 할지라도 연구의 진실성과 윤리성을 어기게 되는 경우가 많은 이유는, 조급한 성취욕구로 인해 그 유혹을 쉽게 끊어내기 힘들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이러한 눈속임은 근본적으로 출중한 과학자적 자질과 탁월한 능력을 갖추었음에도 학문에 대한 순수성이 결여되어 발생하는 것이지만, 책에서 말한 것처럼 사기는 언제나 삐뚤어진 개인이 단독으로 저지르는 행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논문에는 진실만이 있을 뿐 하나의 흠집도 없어야 하며, 자신의 이름으로 내놓은 논문에는 자신의 명예를 걸어야 한다는 글을 언젠가 본적이 있다. 이렇게 정석을 따르는 것이 당연히 정의롭고 당연한 사실로 생각하고 받아들여지지만, 우리의 모든 행위는 사회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나는 모든 것은 현실에서 기초하기에, 과학의 사기는 결국 사회적인 영향으로도 구성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내 생각의 대표적인 이유는 한동안 유명했던 테라노스 사건이다. 스타트업 테라노스는 피 한방울로 260가지 질병을 조기 진단한다는 혈액키트를 발표했고 수많은 유명 언론사에서 주목을 했고 전 세계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정말 많은 사람들을 속일정도로 그럴듯하게 완벽한 그녀의 연기는, 테라노스가 10조의 기업 가치를 지닐 까지 기술의 비밀 유지라는 이유로 잘 드러나지 않았다. 결국 내부 고발자가 나타나면서 진실이 폭로되었는데, 사건이 밝혀지면서 많은 정치인과 관료 출신이 포진해 있었고 의혹들을 권력으로 묵살해왔던 것이 드러났다. 이와 같이 정치와 제도상의 문제와 복잡한 관계 속에서의 암묵적 허용이 과학의 사기가 만들어지도록 동조하고 도움을 주게 된다. 이런 상황의 과학 사기와 맞서는 데 있어서, 평범한 내부고발자는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을 금세 알아차리게 될 것이고, 기득권층은 내부고발자를 너무나 맹렬하게 공격하기에 내부고발은 거의 직업적 자살 행위가 되므로 다른 선택할 방법이 없어진다고 생각한다. 과학사기에 대한 일반적 해결책은, 윤리강령을 만드는 일과 위반자들에 대한 처벌이었으나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이런 접근법은 과학적 연구에서 발생하는 작은 범위의 문제만 관심을 두고, 문제를 일으켰던 핵심적인 권력구조는 그대로 놔두기 때문이다. 결국 본질적인 원인인 총체적인 권력 시스템은 해결하지 못하고 임시방편으로만 작용할 뿐이니, 시간이 흘러도 반복되어 문제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고등학생 때 의학과 과학에서 사기를 예방할 수 있을까, 사기를 예견하고 발견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고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으로 동료심사를 생각한 적이 있었다. 물론 그 당시에도 완벽한 방법이라고는 생각은 안했지만, 서로를 견제하고 주의할 수 있게 만드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서 동료심사제가 그렇게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료심사는 혜택보다 결함이 훨씬 더 뚜렷했으며, 비용도 많이 들고 속도가 느리다보니 학자의 시간을 많이 빼앗게 만들었다. 또한 대단히 선택적이며 편견에 휩싸이기 쉬웠고, 개인적인 목적과 감정에 따라 쉽게 남용되고 최종적으로는 총체적인 결함을 검출하는 능력이 떨어져 사기를 간파하는데 거의 무용지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앞으로는 겉보기에 대단한 성과를 낸 사례들을 항상 의심해야하는지 의문이 들었고, 사기의 발각은 우연한 사건을 통해서 이뤄졌는데 이를 위한 체계적인 안전장치 마련은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지 고민해보는 기회가 되었다. 오류는 부주의한 결과일 수 도 있고, 의도적인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부주의한 비의도성에 의한 결과라도 용인하고 가볍게 지나칠 것이 아니라, 큰 문제로 여기고 사소한 것들도 엄하게 처벌하는 풍토가 만들어져야 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또한 과학계의 지저분한 이해관계 측면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논문들이 품질관리를 가장한 혹독한 조사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신중한 해결방안의 모색이 필요해 보인다. 물론 과학 연구의 현실에 적응하면서 도출된 위계질서로 인한 자연적 결과물에서 벗어날 수 있는 환경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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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의 동의보감연구/김호/일지사

이 책은 동의보감 편찬의 사회적 배경으로 조선전기의 향약론과 역병발생 및 대책을 설명하고, 조선왕족실록의 자료를 분석하여 16세기 기후의 불균형과 역병 사이에 높은 상관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고려후기부터 계속된 향약 장려 정책인 향약론의 전개 과정을 통해 허준이 말하는 조건 구래의 의학 전통이 무엇인지 설명하면서 허준의 생애와 동의보감의 관계를 미약하게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임진왜란이라는 전대미문의 전란을 겪고, 당시 유행하던 전염병도 치료하면서 허준은 백성들의 삶을 깊이 관찰했다. 무엇보다 허준의 생각은 사람들이 질병에 걸리지 않게 미리 알려주고 싶었고 질병, 증상에 대한 약은 나중에 알려줘도 된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병을 고치기에 앞서 수명을 늘리고 병이 안 걸리도록 하는 것은, 당연히 몸을 잘 지키고 병을 예방하는 것이 병 걸린 후 치료하는 것보다 더 낫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환자에게는 질병이 오는 것의 근원을 알려줘 미리 대비토록 하며, 의사에게는 그 덕목을 환자에게 알려주라 한 것이지 않을까. 허준은 무수히 많은 처방의 요점만 간추리며, 국산 약을 널리, 쉽게 쓸수 있도록 조선인이 부르는 이름을 한글로 표현했다고 한다. 시골에는 약이 부족해 주변에서 나는 약을 써야 하는데 그게 어떤 약인지 모르기 때문에 시골 사람들이 부루는 약초 이름을 사용한 것과, 또 인체를 바라보는 관점을 제시해 질병 이전에 사람이라는 근본을 보도록 가르친 내용들을 보면 그가 국민의 건강과 정신을 책임지고 그들을 많이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했음을 알 수 있었다. 서자로 태어나 엄청난 출세 길에 오른 허준은, 선조의 의주 피난길에 동행하며 선조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어 임진왜란 공신 책봉에서 3등에 책정되며 종1품 숭록대부에 올랐으나 선조 승하의 책임을 지고 유배됐다가 돌아온 뒤에는 권세 없는 평범한 내의로 지내다 조용히 삶을 마쳤다. 이를 보면, 의관 허준은 매우 극적인 삶을 살았고, 그의 출세는 조선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대단한 사건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주변 양반들의 수많은 시기 질투 모함이 있었겠지만 이는 오로지 그의 의술과 충성이 빚어낸 성취였을 것이다. 허준은 어려서부터 총민하면서도 학문을 좋아해 경전과 사서에 두루 밝았고 의학에는 더욱 정통했으며, 서자출신임에도 기죽어지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자기의 권한을 행사했다고 한다, 이런 사실들을 보고 그의 머리가 좋고 행동과 판단이 빠르며 지식에 대한 욕구가 매우 컸던 인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의 목표에 대한 열정과 다소 과감하고 솔직했던 행동, 사고방식은 꼭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굉장히 오래전부터 동의보감이란 책을 수도 없이 들어왔지만 큰 관심이 없어서 무슨 내용인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어디에 쓰이는지 알아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수업시간에 하는 동의보감 수업을 이해해보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선정했다. 역사와 관련된 지식이 전혀 없어서, 읽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내용이 많아 참 많이 힘들었고, 수업 때 들었던 내용들이 나와서 그 부분은 약간의 흥미로 읽었지만 모르는 내용을 찾아보고 검색해보며 이해하느라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동의보감은 동아시아와 세계의학사에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고, 한국의학의 전통을 세웠다고 할 정도로 대단한 평가를 받는데, 내가 아직 그 가치를 잘 몰라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 아쉽게 느껴졌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조선의 의학을 알고 한의사로서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허준의 동의보감을 정복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는 점이다. 새로운 환경에 인구밀집 현상으로 다양하고 더 강력한 전염병이 발생했고 우리는 이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는데, 예전에는 이러한 전염병 및 역병이 돌면 어떻게 대처 했는지 엿볼 수 있었다. 허준이 살았던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전반은 잦은 전쟁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한 시기였으며, 이상 기후 현상이 자주 발생했다고 한다. 그래서 조선시대에 역병이 창궐하면 나라에서는 아주 기민하게 움직였다고 한다. 아마도 지금처럼 일반인들이 병원을 쉽게 갈 수 있는 환경이 아니어서 나라 차원에서 의사를 파견해서 환자를 치료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시대의 역병 대처 방법을 보고 생각이 든 것이 있다. 지금은 기후가 변했고 먹는 음식이 달라졌기 때문에, 분명히 예전의 치료법이 현재의 병에 그대로 맞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앞으로 질환을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전체의 문제로 보고 행동해야 하며, 끊임없이 신속하게 연구를 하고 모든 사람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인다면 빠른 시간 내에 질병을 정복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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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대통합: 통섭을 읽고]/지식의대통합/에드워드 윌슨/최재천/사이언스 북스/

통섭학문간 장벽을 뛰어 넘은 지식의 대통합을 주장하는 책이다. 에드워드 윌슨은 책의 주제를 본유의 통일성이라고 밝히며 지식의 통일은 서로 다룬 학문 분과들을 넘나들며 인과 설명들을 아우르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인간 지식이 본래 통일성을 가진다는 전망을 제시하고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의 경계를 허무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모든 지식인이 서로 협력하여 외부 세계에 대한 정확한 지식에 근거해 21세기 지식혁명을 이끌어야 한다는 의지를 피력한다. 이 책은 통섭 세계관에 따른 학문의 기초를 세우는 데 무게를 싣는다. 우선 물리 화학 생물학 등 기초과학과 철학 종교 사회학 계몽주의 사상사 등 인문·사회과학의 각 분과학문을 관통하는 핵심부터 잡고, 이후 학문간 통합을 막는 자연과학자와 인문·사회과학자의 대립, 몸과 마음의 이분법, 윤리 규준에 대한 경험론자와 초월론자의 논쟁, 유물론자와 유신론자들의 적대 등을 짚고 양자의 종합을 모색하고 있다.

윌슨은 과학, 인문학과 예술이 사실은 하나의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분리된 각 학문의 세세한 부분을 체계화시키는 데에만 목적을 두지 않고. 모든 탐구자에게 그저 보여지는 상태뿐만이 아닌 깊이 숨겨진 세상의 질서를 발견하고 그것을 간단한 자연의 법칙들로 설명하고자하는 시도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는 반대방향으로 연구하지만 오히려 환원주의에서 추구하는 것과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통섭은 "지식의 통합"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연결하고자 하는 통합 학문 이론이다. 이러한 생각은 우주의 본질적 질서를 논리적 성찰을 통해 이해하고자 하는 고대 그리스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두 관점은 그리스시대에는 하나였으나, 르네상스 이후부터 점차 분화되어 현재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현대적 관점으로 볼 때 각 지식의 분야들은 각각의 연구 분야의 활동에서 얻어진 사실들에 기반하고 연구하여 이해하고자 하는 학문들이다. 그렇지만 또 다른 연구 분야의 활동에 의존하는 면이 크다. 예를 들어 원자물리학은 화학과 관련이 깊으며 화학은 또한 생물학과 관련이 깊다. 물리학을 이해하는 것 또한 신경과학이나 사회학, 경제학을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된다. 이렇듯 다양한 접합과 연관은 여러 분야 사이에서 이루어져 왔다. 진리의 행보는 우리가 엄격하게 그어 놓은 학문의 경계를 존중해주지 않는 것 같다. 학문의 구획이란 자연에 실재하는 것이 아니며, 학문이란 진리의 궤적을 추적하기 위해 우리 인간이 그 때 그 때 편의대로 만든 것이다. 진리는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데, 우리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 놓은 학문의 울타리 안에 갇혀 진리의 한 부분만을 붙들고 평생 씨름하고 있는 듯하다. 이제는 진리의 행보를 따라 과감히 그리고 자유롭게 학문의 국경을 넘나들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세계화는 진리를 추적하는 학문의 영역들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야 하지 않을까. 21세기에 들어서며 거의 모든 학문 분야에 통합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고 한다. 책에서 나온 설명한 것처럼 생물학은 생물의 거의 모든 걸 두루 연구하는 박물학, 즉 자연사에 대한 연구로 시작한 학문이다. 그러다가 19세기에 이르면 발생학이 생물학의 중요한 한 축으로 자리를 잡는다. 유전학은 20세기에 들어와 멘델의 연구가 재발견되고 분자생물학적 방법론의 도움을 받아 급속도로 발전했다. 그러는 동안 자연사는 꾸준히 넓은 의미의 생태학 또는 야외생물학으로 발전해왔고, 최근에 들어 학제적이고 통합적인 성격을 띤 진화발생생물학으로 등장한 것이다. 이처럼 이제는 과감히 그리고 자유롭게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하나의 실로 서 말의 구슬을 꿰는 범학문적 접근을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하지 못하고 좀 의문스러운 부분들이 있었다. 통섭이 지닌 과학 환원주의적 위험성에 대해 지적하고 싶다. 윌슨의 통섭은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물리적 법칙으로 단순화시키는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이 책을 옮긴 최 교수는 지식의 대통합이라 했지만 과학으로 모든 학문을 통치하겠다는 위험한 발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학과 인문학을 아우른다는 윌슨과 최재천 교수의 통섭은 거의 전적으로 그들이 구축한 사회생물학의 관점에서만 인류의 역사를 바라보며 인문학과 만나려고 한다. 이것은 당연한 현상일 수 있다. 그들이 주로 연구하는 분야가 사회생활을 하는 동물이다 보니 그런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기준은 그의 논적이었던 굴드와 그 밖의 다른 생물학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신경세포의 연결망을 연구하는 신경과학자라면 이 세계를 수많은 개체의 연결망으로 볼 가능성이 높고, 체내 환경과 체외 환경을 중재하는 면역계를 연구하는 면역학자는 생명 과정을 나에 속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 생성되고 변화하는 관계로 파악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진화생물학에서 발견된 사실들은 인간 사회로 쉽게 번역되지만, 신경학이나 면역학의 사실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차이가 있다. 진화생물학은 개체 생명을 다루지만, 신경학과 면역학은 개체 내부의 미시적 현상을 다루므로 거시 세계로 번역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 연구에서 밝혀진 사실들의 의미를 인문학적으로 해석하는 시도들이 활발한 것도 사실이다. 사회생물학에서는 주로 동물 세계에서 발견된 과학적 사실을 근거로 인간 사회를 설명하려고 하지만, 이들 연구에서는 주로 인문학의 시선으로 과학적 사실을 해석하고 사람들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진정한 지식의 대통합을 위해서는 삶에 대한 과학적 설명과 과학적 사실에 대한 인문학적 해석이 모순 없이 만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문학적 반성을 거친 과학, 과학적 사실을 녹여낸 인문학, 그리고 그 둘의 자유로운 소통이 학문 통합의 전제 조건일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인문학은 과학의 장식품으로 전락하거나 또다시 각각의 분할된 상아탑에 자신들을 가두어버릴 것이며, 과학 또한 사람이 아닌 자본과 권력에 봉사하는 도구적 지성으로 타락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것을 아우르는 지배적 담론을 꿈꾸기 전에 먼저 과학과 인문학이 어떻게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어쩌면 사물에 널리 통한다는 통섭보다는 언뜻 보기에 서로 어긋나는 뜻이나 주장을 해석하여 조화롭게 한다는 의미가 더 우선이고 중요한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지나친 세분화로 점점 파편화되는 지식추구에 대한 반성은 필연적으로 지난날들과는 다른 방향에서의 지식활동을 모색하는 계기가 됐다. 분과학문이나 전문분야의 독자적인 연구나 탐구로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어렵고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위기의식이 공유되는 것. 분석의 시대를 넘어 종합의 시대를 맞아, 과거와는 다른 방법으로 전문성을 기르는 방법이 다각적으로 모색되고 있다. 한 우물을 파되 자신이 판 우물에 스스로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 깊게 파되 주변 전공분야와의 다양한 접목을 시도함으로써 깊이 있는 통찰력과 함께 폭넓은 안목과 식견을 동시에 가져야 된다는 문제의식이 싹트고 있는 것이다. 전문분야별로 파편화된 지식을 융합, 다른 전공 분야와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면서 통합적인 안목을 겸비한 전문가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는 현실이다. 세부적으로 쪼개진 협소한 지식에서 벗어나 다른 분야와 소통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는 것은 말은 쉽지만 실로 어마어마한 도전과제가 아닐 수 없다. 통섭은 국내에서 융합이라는 뜻을 지닌 보편어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통섭이라는 말처럼 흔해진 단어도 없는 듯하다. 통섭 개념의 수사학적 아름다움에 도취돼 이것저것 아무거나 섞으면 통섭이라는 식의 착각과 오해가 횡행하고 있다. 통섭이란 큰 줄기를 잡다, 즉 서로 다른 것을 묶어 새로운 것을 잡는다는 뜻이다. 윌슨의 본래 문제의식은 생물학을 중심으로 다른 학문을 대통합하겠다는 의도였다. 일종의 생물학적 통섭이며, 생물학으로 학문을 통합하려는 환원주의적 통섭이었다. 그러나 지식의 대통합은 이루어졌는가? 아니 더 근본적으로 따져 물어보면 학문적 다양성을 굳이 하나의 학문으로 통합할 필요성이 있을까? 어떤 철학자는 실재는 하나지만, 그에 대한 기술은 여럿이고 여럿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서로 다른 수많은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그러해야 하기 때문이다라는 주장을 피력한 바 있다. 통섭이 본래 지향했던 지식의 대통합보다는 다학문적 협동연구나 다학제적 연구로 오용되어 사용되고 있다는 주장처럼 윌슨이 주장한 통섭은 본래의 의미와 다르게 현실적으로 오해되고 오용되어 온 것 같다. 융합이나 통합 등의 통상적 의미를 뜻하는 신조어로 인식하면서 용어 자체가 주는 신선함과 새로움에 끌리는 현상으로 부터 발생한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통섭에 대한 다양한 논쟁이 재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문적으로는 물론 실제적으로 이렇다할만한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벽을 허물고 학문적 경계를 넘나들면서 두루 통하려고 했던 통섭은 결국 서로 간에 말만 앞선 통증만 남기고 말았다. 다른 학문적 영역에 대한 공감을 기반으로 원활한 소통이 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각자 자기 전공에 대한 강한 옹호와 타 분야에 대한 낮은 관심으로 서로 간에 소리 높여 호통을 치다보니 불통되고 울화통이 터지는 형세가 된 셈인 것이다. 한 가지 분야만 깊이 있게 아는 전문성에 대한 한계와 문제점이 제기되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지식의 대통합을 이룰 수 있는 관점으로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통섭에 대한 학문적 논의와는 다르게 실제적으로는 자기 분야에 대한 깊이 있는 전문성을 기본으로 자기 분야와는 다른 분야를 열린 마음으로 이해하고, 한 가지 전문성으로 설명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영역을 학문적 경계 넘나들기나 지식융합을 통해 보다 올바른 이해를 도모하려는 실제적인 접근으로 논의가 귀착되고 있다. 결국 통섭은 학문적 이상으로 제시된 개념이지만 현실적으로 학문적 접목이나 융합을 통해 인식지평의 확대나 인식 깊이의 심화로 그 의미가 변화되어 사용되고 있는 듯 보인다. 결국 통섭은 하나의 이상으로 남아있고 현실은 통섭과는 거리가 먼 융합적 안목이나 접근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고 이전과 다른 설명력과 이해력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통섭의 후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분야가 다른 학문간 공감과 소통, 융합과 창조가 일어나기 위해서 우리 모두가 주의해야 될 사항은 자기 학문 우월주의와 타 분야에 대한 무관심이다. 인문학과의 만남을 강조하는 과학자들, 과학과의 소통을 강조하는 인문학자들이 취해야 할 태도는 상대에게 내 지식을 가르치겠다는 교사의 태도가 아니라, 낯선 문화를 탐구하는 여행자의 태도하고 한다. 학문 분야 간에는 우열이 있는 게 아니라 인식과 관심이 다르고 수준과 차원이 다른 것이다. 누가 누구를 일방적으로 포섭하거나 통섭하기보다 각각의 전문성으로 상대의 한계와 문제점을 보완해주는 호혜적 관계가 존재할 뿐이다. 진정한 의미의 지식융합은 분야가 다른 전공이 만나 서로가 서로에게 자극을 주면서 한 가지 틀에 갇힌 좌정관천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한 분야가 다른 분야의 밖에서 지적 자극을 주고 가르치고 또 때로는 위치가 역전되어 가르치고 배우고 배우면서 가르치는 융합이 이루어질 때 진정한 의미의 지식융합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분야가 전혀 다른 이질적 학문분야를 어느 하나의 학문분야로 통섭하려는 노력보다 현실적인 대안은 각각의 학문분야가 추구하는 목적과 문제의식을 존중하고 주어진 현상을 보다 다양한 관점을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이다. 인식관심의 차원을 달리하거나 궁합이 맞지 않는 아무거나 이것저것 섞으면 아무것도 나올 수 없다. 뚜렷한 문제의식과 목적의식을 기반으로 창조하고자 하는 지식의 원형과 큰 그림을 그릴 때 비로소 차원이 다른 새로운 지식이 창조되는 것이다. 전공의 틀에 갇힌 사고를 해서는 경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차원의 통찰력을 얻기가 어렵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면 지금 몸담고 있는 영역 밖으로 나가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경계를 넘어야 경계 밖의 세계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지평융합이라는 개념은 우리 사회에 가르쳐주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지평융합은 단순한 합의가 아니라 서로 다른 입장이 보다 고차적이고 명료화된 관점으로 종합되는 것과 같은 헤겔적인 의미의 변증법적 종합의 개념이다. 이질적이고 친숙하지 않는 것과의 만남을 통해서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한 차원 고양시키는 도야의 과정인 지평융합은 분야가 다른 전문 분야 간 지식을 융합할 수 있는 수평적 사고방식의 단서를 제공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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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워칭/데즈먼드 모리스/과학세대/까치/인간행동을 관찰하다

이 책은 제스처 뿐 만 아니라, 자신이 처한 상황을 굳이 말로써가 아닌 행동과 표정, 단순한 동작으로 인간이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나타내고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행동에 대해 얼마나 자세히 알고 있는가? 이런 물음을 받으면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대다수는 가끔 상식 문제라던가, 특이한 것에 대한 퀴즈로 나오는 것들만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었을 뿐이다. 인간은 말을 안 하면 자신의 마음이나 생각이 드러나지 않으리라 착각하지만 그건 분명히 틀렸다. 우리의 손과 얼굴표정은 우리의 목소리 못지않게 다양한 표현력을 가지고 있어서, 인간은 자신도 모르게 온몸으로 말을 하기에, 인간의 온 몸이 전부 날 읽어 달라고 하는 하나의 텍스트가 된다. 하지만 이러한 신체언어는 누구나 유창하게 구사하지만, 남의 언어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표현법인 것이다. 단순하게 그저 흥미롭게만 봤던 패턴들도, 이 책을 보니 그것은 모두 인간만이 지닌 고유의 행동 코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스처를 비롯한 인간 동작의 기원은 그에 의해 범주화되고 있지 않지만, 대략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는 것 같다. 동물적 본능으로부터 유래되는 것, 문화생활 속에서 습득되는 것, 역사적으로 오랜 연원을 가지는 것 등이다. 따라서 이런 종류의 양식들은 대부분 의식적으로 형성된다기보다 무의식적으로 형성되고 학습된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그것을 흔히 사용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행위가 생략되거나 부자연스럽다면 우리의 일상생활과 교제는 몹시 불쾌하고 불만족스럽게 될 것이기에, 따라서 상대에 대한 감정의 배려와 원활한 생활의 영위를 위해 이러한 행동양식을 이해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작, 제스처, 말의 리듬을 강조하는 동작, 유도사인, 긍정과 부정의 신호, 인사표현, 지위표현, 영역행동, 장벽신호, 위협신호, 신체장벽, 성신호, 휴식행위까지 60가지 이상의 의사전달 신호를 보면서, 인간은 추상적인 사고나 제작 행위에서는 진보했는지 모르지만 충동이나 동작에서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유전적 계승, 자기발견, 사회적 동화, 계획적 훈련 등 4가지 방법으로 획득해온 동작은 우리가 동물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나 역시 사람을 동물로 간주하는 것이 결코 사람에 대한 모욕이 아니라고 본다. 호모 사피엔스는 영장류에 속하는 하나의 종이며, 다른 종과 마찬가지로 생물학의 법칙의 지배를 받는 생물일 뿐인 것이다. 이는 식당에서 그릇이 나올 때, 사람들을 둘러보면 모두 음식에서 시선을 때지 못하는 그들을 보며, 수 만 년 전 원시인들이 동굴 속에서 음식을 배분할 때 느꼈을 그 처절한 욕망이 현 시대에서도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고 추론해 볼 수 있었다. 나는 책을 완성할 정도는 아니지만 시작의 이유는 모르지만 어릴 때부터 사람들과 나의 행동을 늘 돌이켜 생각해보고 항상 의도를 추론하고 분석하는 습관이 있다. 아주 사소한 단어나 어절의 변화이지만 결과가 달라지는 경우와 내가 이렇게 반응하면 상대방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를 늘 예측해보면서 행동하고 사고한 결과 얻어낸 소중한 기술들이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아주 완벽하지는 않아도 이제는 상대방이 말하는 태도와 어조를 바라보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원하고 숨어있는 화자의 의도를 거의 정확하게 짐작가능하다. 나의 오만한 태도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 화자가 하는 행동과 말을 들어보면 십중팔구는 나의 예상이 맞았던 경험을 축적해 나가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나의 경험들을 토대로 의도적으로 어떤 행동이나 말을 바꿔서 연기 하는 경우가 상당히 자주 있는데, 상대방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나의 가장 본래적 의도에 맞게 따라오곤 한다. 아주 사소하지만 효과는 크게 달라지는 이러한 화법과 행동을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상대를 속인다고 생각할 수 도 있겠지만, 나는 아주 유용한 협상전략으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절대로 겉으로 드러내지도 않을뿐더러 이런 기술들을 더 발굴해내고 경험을 축적하기 위해 힘쓰고 남들보다 몇 보 더 앞서나가 사고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멀리서 보면 틀이 없이 너무나 다양하고 때로는 의미가 전혀 없어 보이는 것 같지만, 가까이서 관찰하고 지켜보면 일종의 정형화 된 틀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이런 분석은 의사소통을 더 원활히 하기 위해서도 중요하지만 넛지처럼 눈에 안 보이는 가벼운 터치로 상대방의 행동에 부드럽게 개입하여 약간의 통제권을 지닐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이렇게나 공감이 잘 가는 책이 없는 것 같이 느껴질 만큼 너무 재미있게 봤고, 기발한 상상력 그리고 놀라운 관찰력과 추리력을 결합되어 인체신호의 새로운 실마리를 앞으로 풀어가야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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