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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조르주캉길렘/여인석/그린비

 

책은 상당히 많이 전문적인 내용들이 있어서, 아직 잘 모르는 지식이 많은 나로서는 아주 난해하게 느껴졌고, 괜히 오해하여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은 것 같아서 이해되고 흥미가 가는 부분을 위주로 읽어나갔다. 철학적 개념이다 보니 두 가지 개념이 있을 때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들이 아무리 읽어도 같은 의미인 것 같고, 그 미묘한 차이를 찾지 못하겠는 경우가 있었다. 의학과 철학을 관련지어 설명하는 책들을 최근에 몇 권 읽었지만, 나는 의학에 형이상학을 융합해서 의학을 바꿔보려는 행동은 위험하다고 생각이 든다. 의학의 본질적인 부분은 순수한 학문성이 아니라 정상의 확립과 회복의 기술인 임상과 치료이다. 철학은 의학기술 발전 방향이나 속도를 조정하는 보조적 역할을 할 수 있을 뿐이지, 의학활동에 대해 규범적 판단을 내리거나 서로 차원이 다른 학문을 통합하려는 태도는 지양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의학의 방법과 성과들을 철학적으로 사색하는 점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나도 가끔씩 내가 보고 내가 인식하는 것들이 정말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오랜 시간의 교육과 사회 환경과 분위기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인지하고 사고하고 있는 것일까 의문을 가졌을 때가 있었다. 나와 방향은 조금 다를지라도 여기서 의도하는 내용들은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을 실체와 규범적 성질에 대하여 논의한 것 같았다. 현실에서 병원을 다니면서 수치에 의해 판단을 내리는 것을 보며, 나는 정상과 비정상, 건강과 질병은 의학에 있어서, 각각이 따로 존재하는 실체의 개념이 아니라 정상의 범위를 넘나드는 것에 따라 발생하는 불균형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했다.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한의학도 질병 발생을 전체적 조화가 깨진 불균형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나의 생각과 일치한 것 같았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감염되어 생기는 전염병을 고려하면 객관적 실체가 있어서 인체라는 문을 통해 들어온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몸의 체계가 무너져서 생기는 결핍증을 보면 조화와 불균형의 문제인 것 같기도 했다. 복잡한 인체의 작용을 단순하게 한 가지 이론만 선택하여 설명하기는 어려워보였다. 이와 달리 저자는, 생명체가 정상적인 생명과 병리적인 생명 사이에 설정하는 가치의 차이는 규범적인 것이며, 이러한 규범은 어떤 개체를 평가하여 교정을 가능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또한 독립적인 각각의 생명체와 환경은 정상적인지 여부를 따질 수 없고 상황을 정상적으로 만드는 것은 이들 간의 관계라고 말하며 불균형의 문제나 실체적 접근이 아닌 관념적 문제를 언급했다. 실제로 문제가 되지 않을지라도 이전의 사례를 통해 확률 상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면, 비정상으로 판단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로 생각된다. 이를 보면 의학은 평균적 정상을 객관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고유한 규범성을 인식하는 것이고, 의사는 환경과의 관계와 개체의 특이점 속에서 병리적인 것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반드시 요구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깡길렘은 정상의 개념은 자체로 객관적인 측정이 가능한 어떤 실체 개념이 아니며 병리적인 것은 정상적인 것의 일종으로 봐야 한다.’라고 주장한 것이 아닐까. 19세기의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의 관계에 대한 주장을 보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었는데, 의학을 질병에 대한 과학으로, 생리학을 생명에 대한 과학으로 간주하라는 베르나르의 말이 나에게 크게 다가왔다. 진정한 합리적 치료는 과학적 병리학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고, 과학적 병리학은 과학적 생리학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예과이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겠지만, 알고 안하는 것과 모르고 못하는 것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이런 생각의 기회를 가졌다는 것이 나에게 소중했다. 내용이 많이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렸지만,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주제와 전혀 생각 안 해봤던 사고방식을 받아들이고 고민해 보며 나의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책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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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문화찾기/천소영/한국문화사/고유어 어원에 담긴 한국문화

우리는 자신이 지닌 가치관이 드러나고 생각하는 대로 말하며, 말하는 대로 행동하고, 그 행동들은 모여서 우리의 인생을 만든다. 또한 언어의 순서와 표현에 따라 나라마다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한다. 어떤 나라에서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알기위해서는 그 나라가 가지고 있는 동의어 수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뭔가를 중요하게 여기면 여길수록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단어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처럼 언어와 우리의 사고방식 및 가치관은 상당한 연관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는 것 같다. 언어만으로 한 국가의 국민성을 완전히 판단할 수는 없지만, 언어를 통해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는 것처럼, 말과 언어가 우리 개별과 국가의 정체성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말의 문화 책에서 나온 것처럼, 문화라는 개념 속에 언어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언어는 무엇보다 문화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첫 번째 요소다. 언어를 빼놓고는 문화를 운위할 수 없을 정도로 한 언어 속에는 그 언어를 만들어 낸 사람들의 생각과 느낌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의 정서나 사고방식, 의식구조 등이 용해되어 있다고 한다. 언어가 문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한민족이 쓰는 한국어에는 한국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말은 인간의 생각을 담는 그릇이자, 느낌과 기분을 가시적으로 그려 내는 그림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 한국인은 생각을 담는 그릇인 고유의 말이 있을 뿐 아니라 그 말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 곧 고유문자로서의 한글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맙고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그러나 요즘 빠르게 문화가 변하는 시대에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이 있다. 우리말의 파괴는 정말 막아야 하는 것인가. 시도 때도 없이 줄임말을 사용하고 영어와 섞어서 사용하고 때로는 완전히 새로운 제3의 언어를 만들어 사용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물론 계층별 은어는 과도하게 쓰면 문장이 이해하기 어렵고 쓸데없이 외래어가 많이 들어가 있어 읽는 것 자체에도 거부감이 들며, 소통을 어렵게 하며 불쾌감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러나 좋게 보면 한글의 장점을 살리고, 언어생활을 풍성하게 만든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말이 생기고 사라지는 건 원래 언어의 숙명이기도 하다, 과거의 문화가 바뀌면서 지금까지 수많은 어휘들이 삭제되고 생기고 의미가 확대되고 축소되고 전이되면서 조상의 삶의 태도와 생활을 보여주었던 것처럼, 지금도 우리 삶의 흔적이 새겨지고 있다고 볼 수 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변화에 대하여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우리말 파괴에 심각성을 지적하는 것의 원인은 공감의 차이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성적으로 우리말 파괴에 대해 고민을 한 것이 아닌 감성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언어 특히 한국말의 신비로움을 이용해 잠깐의 재미 또는 잠깐의 흥밋거리를 찾고 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걱정이 되는 것은 과거에는 지금처럼 이렇게 심각한 외래어 남발과 한국어의 변형이 없었다는 것이다. 언어가 우리의 가치관과 생활에도 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데, 이렇게 말을 변형해서 하는 것을 계속 내버려 두는 것이 괜찮을까싶다. 단순히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이상하게 바뀌어버린 우리의 언어습관이 세대 간의 소통을 단절시키고 나중에는 부정적인 행동과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미칠까봐 두려운 것이다. 우리가 진정 우리말 파괴에 대한 이런 심각성을 인식하려면 이런 흥밋거리에 가려진 우리말 파괴에 대해 진지하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어는 늘 변하기 마련이고. 그 변화의 시도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늘 있었다. 이게 기존의 것과 다르다 보니까 파괴로 느껴지기 쉽지만, 완전히 배척하기 보다는 어느 정도 한계를 설정하면서 하나의 문화적 형태로 보고 새롭게 변화한 것들을 받아들이고 발전시키기 위한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언어는 그 문화에 속한 사람을 자유롭게도 하고 구속하게도 하는 영향력을 가지는 만큼, 우리가 사회를 영위하고 문화인 생활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도구인 언어를 소중하게 여기고 활용하는 자세를 갖추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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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사의 터닝포인트24/로버트E.애들러/조윤정/아침이슬/히포크라테스에서 인간유전체까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막연하게 우리가 지금 접하고 있는 의학은, 어느 시점부터 과학적인 발명이 나타나면서 연쇄적으로 의학으로 발전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인류의 조상들은 어떻게 부러진 뼈에 부목을 대고 고정을 하면 골절상을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 어떻게 토착문화가 건강과 질병에 대한 이론들을 가지고 있었을까 의문도 들었다. 의학적 발전의 역사를 연속해서 읽으면서, 급격하게 많은 기술들이 개발되고 새로운 것들이 발견되면서 앞으로 미래 의학의 발전은 어떻게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꿀 수 있을지 기대가 되었다. 생명, 건강, 질병의 기초적인 부분부터 이해하고 응용할 수 있는 능력들을 확보함에 따라 아직 해결하지 못하는 난치병과 불치병들은 천연두처럼 서서히 정복 가능한 질병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의학이 발전되기 전에는 인간의 몸에 대한 지식이 없었으므로 정말 다양한 진술이 가능했으며, 어떤 주장도 확실히 반박하거나 증명해내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분야나 새로운 분야에서는 권위자가 한 주장이 꽤 오랜 시간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위에 맞서는, 책을 읽으면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두 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헤로필로스는 자신의 발견 기초를 토대로 권위자의 견해에 반박하고, 에라시스트라토스는 자신들이 해부를 통해 배우고 학습한 것을 바탕으로 외과학을 발전시켰다. 이들을 보며 진정한 과학자는 어떤 독단에 굴복하지도 않으며, 자신이 세운 이론이 독단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사람이며, 나아가 자신의 이론조차 회의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들이 주장한 이론과 견해가 다 맞는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그들의 연구와 발견으로 인해 우리 인체가 더 이상 신화적인 존재가 아니라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장애가 찾아올 수 있는 하나의 기계라고 인식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던 것 같다. 헤로필로스와 에라시스트라토스가 해부학 연구를 크게 진전시킴에 따라 이전까지 지극히 신성한 신비의 세계로 남아 있던 인체의 내부가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오면서 차츰 학문적인 발전으로 이끌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많은 과학적 발견에 의해 근거 중심의학이 시작되었고, 임상실험과 근거를 발견해내며 이들은 의학을 더욱 발전시키면서, 지금의 인간수명의 연장과 삶의 질의 향상을 목표할 수 있었던 것 같았다. 한편, 의학의 경계를 확장하는 일은 그 대가로 목숨을 요구하기도 했다. 의학도 다른 학문의 경우처럼 명민한 통찰력과 함께 관행과 타성에 타협하지 않는 용기를 가진 인물들 덕분에 발전을 거듭해왔던 것이다. 이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어 지금 우리는 많은 전염병들을 정복할 수 있었는데, 자신이 뜻하는 바를 달성하고 이루기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 그런 모티브를 만들게 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자신이 전염의 위협 속에 있기에 자신의 건강을 잃지 않기 위해 한 행동은 아니었을 것이다. 우선 자신이 좋아하고 원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흥미를 느꼈고, 자신의 기술과 능력을 활용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싶었기 때문일까. 심장의 혈액순환운동처럼 오늘날에는 너무나 자명하게 보이는 과학적 견해도 의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흘러야 했다고 한다. 아마도 모두 기존 학계의 편견과 선입견, 불신 때문에 이러한 어려움을 겪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문제의식이 생기고 제대로 원인을 진단하려면, 편견에 속지 말고 제대로 원인 짚어내고, 내가 생각하는 원인에 대해 반대되는 사례가 얼마나 되는지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한 번 더 느끼게 되었다. 과연 그럴까하고 끊임없이 나의 생각에 거침없이 던지는 물음표는 진실을 확인시켜 줄 것이다. 또한 원인과 이유를 짚어 낼 때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차가운 눈이 필요하지만 밝혀낸 원인으로 문제를 치료할 때는, 가슴에 먼저 물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그릇된 정보가 넘치는 정보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과학적 사고하는 습관이 필요하고 이러한 사고능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편견을 구분해내고 없애는 일이 나에게 필수적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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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의 상징세계/김종대/다른세상/33가지 동물로 본 우리 문화 상징세계

어릴 때 까치를 보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 까마귀가 울면 재수가 없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었다. 지금도 개인의 상호간 융화관계나 상충관계를 보기위해 점을 칠 때는 사주와 더불어 12지신의 동물을 통해 살펴보고 있으며, 개인의 운명, 심성을 파악하는 잣대로 활용되기까지 하고 있다. 때로는 꿈에 돼지가 나오면 좋은 꿈이니 복권을 사야한다는 말이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전해지고 있다. 이를 보면 동물과 관련된 상징과 예측이 우리 삶과 많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누구나 알 수 있는 당연한 이야기에 대해 몇 가지 확실히 잘못된 오류들을 보였고, 억지로 말이 안 되는 글을 연결하면서 기술하는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동물과 관련된 몰랐던 속담이나 속설들을 알아볼 수 있었고, 우리민족의 동물상징의 세계는 우리민족이 일구어온 문화적 틀 속에서 이해해야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상징은 그 나라의 고유한 문화를 나타내는 빛깔이라고 한 것처럼, 동물들과 관련된 상징을 보면 자연환경과도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희귀하게 보이는 것을 관련지어서 행운 또는 불운을 점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속설이 계속 전해진 것도 자연에 따라서 농사의 풍년과 흉년 그리고 날씨가 잘 조화되었기 때문에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지만 다 자연과 문화에 의해 얼추 예측이 맞았고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는 것인 것 같았다. 예를 들어 소는 과거 소중한 노동력이며 목돈을 마련하는 역할까지 했다는 사회문화를 생각하면, 이런 친숙한 동물의 속성이 한국인의 정서 속에 녹아들고 여러 가지 관념과 풍속을 만들어낸 것 같았다. 따라서 이러한 상징체계는 생물과 문화에 따라 계속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물과 변하는 날씨처럼 변하기도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상징문화는 구성원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집단과 시간에 따라 변한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를 왜 내가 알아야 할까 의문이 든다. 이에 대한 답으로, 문화는 현지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배우게 하며, 여러 실용적인 목적을 충적시킬 수 있기도 하고,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하여 우리를 잘 파악할 수 있게끔 만들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사람도 첫인상이 중요하듯 한국하면 떠오르는 연상 이미지는 한국 고유의 생활문화라는 조사를 본적이 있다. 우리의 상징들은 한국 문화를 대표하기도 하고 다른 나라와 차이를 만들면서 국가에 대한 전체적인 생활과 정서의 문화를 보여준다. 우리는 자라면서 쉼 없이 들어와서 자연스럽고 전혀 특이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들도, 외국인의 눈으로 보면 다른 문화의 차이로 인해 신기하게, 예쁘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우리 문화 상징체계를 잘 활용하면 국가 브랜드를 만들어 국가 혁심역량인 정체성형성에도 기여를 할 수 있지 않을까한다. 문화를 통해 국가 브랜드를 제고하는 것은 문화상품을 통해 국가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것으로 경제적 효과를 높이는 것뿐 만 아니라 정치와 사회적 요소에 긍정적인 영행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나온 것처럼 우리는 자연물을 포함해 다양한 사물을 보면서 의미를 부여하는 상징행위를 한다. 이 상징은 사회마다 다르게 부여되고, 사람들의 관념과 가치에 영향을 직접,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면서, 사회구성원의 행동을 지배하는 신념과 감정체계를 만들고 심지어 한 사회 집단의 성격을 규정하게 만든 것처럼 보인다. 인간인 우리의 의식에 모든 세상 사물들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보인다는 것을 고려하면, 인간은 세상에 질서와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이 무엇에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세상이 완전히 달라 보이기 때문에 이러한 세계관과 문화적 가치관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인간의 주관적 시선에 의해 만족도가 달라지기에 어떤 방향에서는 객관적 사실보다 자신이 사건에 부여하는 의미가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런 상징적 문화들은 물질적인 것에 대해서만 의미를 부여하고 생명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초라해진 현대인의 가치관에 대해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지 않나 생각 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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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구하는 집 제중원/박형우,박윤재/사이언스북스/조선, 새로운 의학을 만나다

몇 년 전에 제중원을 연세대와 서울대 병원이 자신의 뿌리라고 주장하며 싸우는 기사를 봤던 기억이 난다. 역사가 너무 재미없고 싫어서 제중원이 뭔지 관심이 없었기에 제중원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제중원이라는 서양식 병원이 조선에 가져온 새로운 의학이 미친 영향을 살펴 볼 수 있었다. 선교사들은 미신에 의존한 치료법과 사고방식을 고쳤다고 볼 수 있겠다. 그들이 내세운 가치들이 전부 옳았다고는 할 수는 없겠지만, 가난한 동양의 식민지에 도착한 선교사의 눈에 비친 민간요법들은 의미도 모호한 미신으로 보였을 것이다. 서양의술과 아직 보완이 덜 된 민간요법들은 분명히 차이가 존재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도 여전히 어디엔가 남아서 전해지는 배 아플 때 숯가루 먹기, 다래끼 난 눈에는 참기름 바르기, 벌에 쏘였을 때 된장 바르기 같은 전혀 검증 안 된 민간요법들을 보면 과거에는 얼마나 더 많은 위험한 행위들이 있었을지 쉽게 상상가지는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굶주림과 질병에 내몰린 동양 사람들에게 즉각적으로 효과가 나타나는 서양의술의 효과는 정말 귀신같았을 것이다. 여성간호사가 배출되고 여성들의 산부인과 치료가 이뤄진 것도 어쩌면, 동양과 다른 서양인들의 가치관이 반영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갑신정변 이후 초기 선교사들은 한의사가 민영익을 치료하는 것을 보았고, 그 중 알렌은 정말 한의사들의 치료가 효과가 있길 바랐다고 한다. 심지어 무당의 굿을 보면서도 미신이라고 무조건 무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나라의 전통과 문화가 기독교 신념과 위배되는 것이라도 처음부터 막무가내로 비판하지는 않은 것이다. 완전히 다른 가치관과 성장환경의 차이를 고려하고 존중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고 내적인 갈등도 많이 발생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나 초기선교사들이 활동하던 당시 상황을 고려했을 때 알렌의 한국 전래의 치병 방법과 한방을 인정한 태도와 성격은 정말 대단하고, 지금 같이 다양한 인종과 다른 문화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는 시대에 미국 선교사들의 희생정신과 삶에 대한 자세는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시기에 한국인들은 병원에 와서 진찰을 받고 수술을 하고, 치료비를 낼 때 그 의료행위에 대한 수가가 아니라, 의사에게 혜택을 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처음에 이 내용을 봤을 때는 알렌처럼 똑같이 놀랐지만, 잠시 생각을 해보면 그 당시 의생들이 얼마나 혜택을 누리며 살았기에 그렇게 생각했을까 싶었다. 지금은 다들 당연히 의료수가로서 돈을 지불하는 것이라 여기지만, 그 당시에는 아직 그런 개념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쩌면 지금 우리가 당연히 여기고 있는 것도 시간이 흘러서 보면 불합리하고 말도 안 되는 것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조선 관료사회의 부패로 인해 파견 관리가 훨씬 늘어나면서, 제중원은 병원 예산 문제로 병원 운영이 파행을 겪었기에, 지속적으로 의학교육을 제대로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는 점은 정말 아쉬웠다 . 조금만 국가에서 신경 쓰고 제대로 운영이 되었다면 우리나라의 의학적 발전은 더 빠르고 아주 우수한 수준에 다가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제중원 설립의 숨은 목적은 개신교 선교와 미국 외교의 영향을 확대하려는 것으로 보였지만, 한국인의 세계관과 신체를 둘러싼 의식에 큰 변화와 영향을 주었고, 인간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드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제중원이 있어서 단순히 병을 치료해주는 기관이 아니라 국내 첫 의학교육과 고등교육을 실시해 우리나라 스스로 인재를 양성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왔던 것 같다. 또한 서양의학이 단순히 남의 의학으로 남아있지 않고 이 땅의 의학으로 토착화되고 발전하기 위해서 노력한 결과, 근대 서양의학이 더 이상 외래의학으로 남지 않게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알렌의 치료는 인종이나 종교나 이념을 초월하여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로서의 본분을 지키는 일을 했다. 나 역시 앞으로 나의 여러 지위에 대한 자신의 직책에 충실하게 임하기 위해 언제나 주의하고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며,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나의 여유를 베풀고 상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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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내경의 기원/위쯔한/김기왕/일중사

한의학을 앞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원전을 공부해야 한다고 한다. 나는 입학하기 전부터 지금까지 내가 왜 이런 옛날 원전을 읽고 있어야 하는지 의문스러웠다. 한의학의 현대화 과학화를 주장하면서 왜 고서에 머물며 우리가 이를 외우고 공부해야하는 것인지 답답했다. 그래서 이렇게 하는 것이 의학 본래의 목적인 질병의 치료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지 의학사 시간을 통해서 조사를 해본 적도 있다. 현재 한의학을 비호하는 사람들은 고서를 읽으면서 공부하는 한의학의 표준화 되지 않은 용어나 현대 의학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내용들을 비판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가 지금 해결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문제들을 원전을 통해 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원전은 왜 필요한 것이고, 어떻게 활용해야하는지 알아보려는 의도로 책을 읽게 되었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다보면 어떻게 이렇게 신기한 의술들이 한참 오래전의 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고, 이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러한 기술들을 접하고 익히게 된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서양의학의 역사를 소개한 책들을 읽으면서 새로운 발견을 할 때까지의 과정을 살펴볼 수 있었지만, 한의학의 침술이나 탕약처방에 관해서는 어떻게 발견하게 되었고 하나의 치료법으로 다듬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왜 그런 수많은 이론들이 만들어졌고 어떤 과정을 통해 이론을 확립해나갔는지 호기심을 풀어주지는 못했다. 서양에서는 해부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의술을 펼쳐나갔는데 왜 동양에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의술이 발전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아주 근본적으로 책이 왜 쓰이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알면, 그 목적을 이해하고 필요성을 생각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는 유래를 설명하긴 하지만 내가 얻고자 하는 바를 가져다주진 않았던 것 같다. 한편, 원전을 번역한 번역서를 보다보면 원저자의 의도가 제대로 들어간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학파에 따라서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제외하고 자신들이 주장하는 방식으로 기술하기도 하고, 증상의 한사심복처럼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단순히 단어만 표현해서 의미가 왜곡되기도 한다. 그래서 원전의 실질적인 필요성을 찾는 것을 잠시 내려놓고, 우선 원서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라도 하려면 번역서를 통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원저자의 의도가 곡해되지 않도록 출판본 그 자체를 우선적으로 보고 공부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원전을 읽는다고 해서 우리가 원저자의 의도를 그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원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로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고려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래서 내가 원전을 읽는다고 해서 제대로 의미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책을 보면서, 내경이 어느 순간 온전하게 작성된 것도 아니고 오랜 시간 추측을 하면서 서로 다른 단어를 사용하며 내용이 변하기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편과 권을 시대에 따라 다르게 사용한 것이 문제가 되어, 영추와 소문이 황제내경과 같은 책인가라는 물음이 생겼을 때는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지어진지 오래된 책인데 아직도 이렇게 연구가 안 되었나싶으면서도, 개념의 문제로 인해 역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책을 서술하면서도 계속 문제를 좀 더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말이 많이 나온다. 이를 통해 우리가 공부한 한의학의 기초이론은 순수하게 의학지식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란 것도 확인 할 수 있었다. 또한 반드시 원전이 옳은 것도 아니고 설령 원서로 학습을 하더라도, 원서 역시 많은 편집자에 의해 의도적으로 수정되고 추측하면서 본래 뜻이 이미 바뀌어있을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하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일부 경험적 발견이나 과학적인 발견도 포함되긴 했지만. 비과학적인 내용이 훨씬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했던 것처럼 원전이라고 다 옳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최종적으로 든 생각은 물론 고대의 해부 지식이 현대의 해부학적 개념과 갗이 명료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는 있겠지만, 원전은 한의학 분야의 기초가 되고, 과거와 현재의 교량역할을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 배울 여러 이론의 이해를 돕는데 사용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경험과 배경지식에 따라서 원전은 중요하다는 말이 참이 될 수도 거짓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원전을 통해 언제까지 어떤 치법이 활용되었고, 지금도 유효한 기술인지 평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한의대를 다니면서 원전과 의학이 어떤 관계인지 계속 고민해야 두 학문이 공존하는 의의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의학을 배우면서 과거는 신뢰하기 어렵기에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현대 학문의 자세인 비판적인 시각으로 이론과 사건의 진위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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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의학의 탄생/미셀푸코/이매진/의학적 시선의 고고학

의학적 시대적 단절을 추적한 의학사 연구에 관한 책이다. 인식론에 대한 철학적 개념도 거의 전무하고, 의학적 지식도 사실상 전무한 나에게는 이해하기도 힘들고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다. 한 문장을 읽는데도 이해가 안 되어 계속 반복해서 보느라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고고학이 무엇인지, 담화분석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설명이 안 되어있어서 깊은 의미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고, 관심분야도 아니고 아는 내용이 없다보니 단어 자체의 의미만 이해하며 읽으려고 했기에 정말 솔직하게 책의 절반이라도 말하고자 한 바를 잘 이해했는지 걱정된다. 이 책은 다른 책들과는 다르게 임상의학의 탄생을 언어적 역사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 같았다. 독특하게도 의학이 새로운 관찰기법이나 기술의 발전을 통한 병리적 원인을 밝혀내서 생긴 것이 아니라, 보이고 말해지는 것에 의한 언어적 관계가 밝혀지면서 인간의 몸을 이에 접목시키기 시작했기 때문에 임상의학이 탄생했다고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의학이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과 그것을 드러내는 방법이 문제가 아니라 대상을 인지하는 주체의 경험의 수준이 달라진 것이라고 주장하며 보이는 것을 강조하며 말하고 있다. 의학 자체로서 임상의학이 발전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언어체계가 생기고 적용되면서 의학적 지식을 교환할 수 있는 의사소통이 생기고 이로써 임상의학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이로써 점차 임상의학은 보이는 질병을 가진 신체에서, 시체 해부를 통해 보이지 않는 질병을 가진 신체로 시선을 옮긴 것이다. 이는 언어의 사회성에 의해 우리가 일대일 대응을 시켜가며 무엇을 정의하고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환자와 의사가 대화를 이어나가고 교육과 연구로도 지식의 획득이 가능해졌다는 의미 같았다. 가끔 생활하다가 우리에게 언어의 사회성이 없으면 어떻게 우리가 같은 대상으로 대화를 하고 의미를 주고받을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 적이 있었다. 아마 푸코도 이러한 생각으로부터 이런 주장을 내세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처음 읽을 때는 물론 언어로 인한 지식교환도 기본적으로 중요하다고 동의는 하지만 이게 과연 임상의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 근본적 원인이 될까 의문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나의 의문점은 해결되었다. 많이 경험한다고 반드시 지혜로운 것은 아니듯이, 우리의 인식 과정을 거쳐야 무엇이든 제대로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이다. 관찰하고 말하고 인식하면서 상관관계를 밝히게 되고 이를 통해 의학만이 아닌 어떤 분과는 시작할 수 있는 기초적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었다. 특히 의학적 분야를 통해 설명해서 그런 것이지 아마 푸코는 모든 학문의 탄생은 언어체계로부터 탄생했다고 철학적으로 주장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지 조심스럽게 생각해보았다. 이러한 언어체계로 인해 새로운 공간화로 옮겨가고, 부자들이 다른 사람의 질병을 이해하는데 돈을 내고 투자를 하면서, 가난한 자에게는 질병의 고통을 덜어주지만 부자들에게는 안락함을 보장하기 위한 지식을 만드는 계기로 발전하면서 1차 공간화, 2차 공간화, 3차 공간화로 점차 발전되었다고 한다. 책의 초반에 임상의학의 탄생이 서로 다른 계기에서 출발한 의도로 인한 것이라는 설명이 도대체 이해가 안 갔는데, 억지로 읽어가며 책의 후반부에 와서야 임상의학의 탄생을 단순히 과학적이고 정치적이며 경제적인 이데올로기에만 연결시켜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의학이 건강보다는 정상의 문제에 관심을 나타낼 때, 비슷한 시기에 과학에서도 생물학적 차원을 넘어서 건강과 죽음을 구분하는 지식 영역의 확장이 있었기에, 의사는 단순히 환자의 병을 치료하는 사람이 아니라 환자의 신체를 의학적 권력과 시선의 대상으로 정상인과 환자를 가르는 언어로 지식으로 작동시키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또한 병원구조개편, 의료행위와 교육에 관한 법률 제정들을 통해 사회 경제적 요인이 임상의학이라는 새로운 인식의 장을 의학지식에 부여하게 되었는지 생각해보면서, 일반적이지 않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아주 근본적인 인식론적 사건들도 다시 한 번 새롭게 고려해봐야 하는 것이었다. 아마 기존의 철학 책들과 다르게 의학도를 겨냥하여 기술하면서, 기능적이고 기술적인 지식에 갇혀 있는 의대생들에게 지식에 대한 반성적 사고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철학과 같은 인문학적인 요소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이공계와 메디컬 학생들에게 분과학문의 통합적 중요성에 대한 생각을 한 번쯤 할 수 있게끔 도와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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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과 인류의 역사/윌리엄H.맥닐/허정/한울

이 책은 전염병을 역사 변화의 가장 큰 원인으로 주장하면서 질병과 역사의 흥망성쇠를 최대한 연관 지으려고 노력한 것 같다. 로마 제국 말년의 몰락, 인도와 그리스의 문명 변화, 콜럼버스의 신대륙 개척과 같은 중요한 사건들에 있어 그것이 일어나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다양한 전염병을 핵심으로 두고 있었다. 다양한 사례 분석과 함께 많은 주장과 근거를 내세우면서 새로운 역사 해석 방식을 제공했다. 의학사 시간에도 들었던 것처럼, 전염병의 역사는 인류의 문명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한다. 무리생활을 하고 정착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온 서로 다른 인종간의 교류가 발생하자 주변 환경 역시 비위생적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문명과 함께 시작된 전염병은 우리 역사와 늘 함께 해왔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병원균의 요소를 의미한 미시기생과, 전쟁과 억압 그리고 수탈 등의 인위적인 요소를 의미한 거시 기생이라는 표현으로,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이 변화를 겪어왔다고 설명하는 것이 나름대로 독특하게 받아들여졌다. 그리스의 전염병, 고대인도의 전염병 방어, 유럽의 페스트, 대항해시대의 정복과 번영 같은 주장을 보면 전염병에 대한 이론으로 한 나라의 비약적 발전과 실패를 살펴볼 수 있었다.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많이 모자랐고, 책에서 설명하는 내용들은 나에게 거의 처음 접하는 내용이 다수였지만, 책을 읽으면서 약간 불편함을 느끼기도 했다. 한 가지를 설명하기 위해 먼 시기까지 억지로 연관시킨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오로지 질병으로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 무리한 주장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실제 전염병만이 아닌, 인간 사회에서 벌어지는 정치 경제적 문제까지 '거시 기생'이라는 표현으로 전염병과 역사를 해석하려는 태도로 자신의 이론을 관철하기 위해 기술한 점은 이 책의 한계가 아닐까 생각한다. 저자의 추측으로 단정되는 부분이 눈에 띄게 있었기에 아직 아는 것이 없는 나의 입장에서 얼마나 이러한 정보를 받아들여야 하는지 고민되었고, 그저 전문적으로 연구했던 학자의 역사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만 보고 넘겼다. 우리가 흔히 농업을 시작한 시기이래로 식단이 훨씬 더 풍요로워 짐에 따라 건강이 좋아지고 평균 수명 또한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수렵 채집 시기보다 칼로리는 많이 섭취할 수 있었지만 탄수화물 위주의 식단으로 인해 영양분은 이전보다 못해졌고 이에 따라 우리 몸의 저항력은 약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인구의 밀집으로 인해 인간은 각종 질병에 걸리기 쉬운 환경 속으로 접어들며 야생 동물의 가축화는 인수공통감명병의 통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전염병과 싸운 의학의 발전으로 인간사회는 윤택해지기도 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새로운 질병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며 끊임없이 연구하고 밝혀내야하는 처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하나를 해결하면 다양한 문제를 연쇄적으로 해결하고 발전시키며 우리 삶을 윤택하게 돕기도 하지만 이전에는 겪지 않았던 새로운 운명을 받아들이고 움직이는 인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를 극복해보려고 노력해오고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었다. 물론 과거보다는 평균수명은 늘어났고, 생물학적으로 볼 때에 우리 인간의 최대 기대 수명은 120살이라고 한다. 하지만 오래도 살고 건강하게 살려는 것이 목표이지만 그것이 그리 쉽지는 않는 것 같다. 평균수명은 늘어났지만 우리는 과거 보다 건강하다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건강과 평균 수명은 단순한 비례 관계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느껴졌다. 그러면 우리가 건강하게 오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은 계속 쏟아지고 닥쳐오는 질병을 없애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의 후반을 읽으면서 한편으론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도 들었다.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과거의 실수와 잘못된 역사를 벗어나 다른 어떤 새롭고 더 나은 환경과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했다. 또한 과거의 불치병들은 정복해나가면서 또 새로운 종류의 질병이 우리에게 찾아오지 않을까 한다. 얼마 전에 게임 중독을 하나의 질병으로 보기로 결정한 것처럼 이제는 길어진 수명으로 인한 자살문제와 영양과다로 인한 비만이 다음 세기의 새로운 과제로 등장할지도 모르겠다. 변화는 우리에게 많은 기회를 주기도 하지만,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변화로 인해 두려움도 동시에 생기게 된다. 우리는 앞서 겪은 역사를 통해 새롭게 다가올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명확한 목표의식과 주의사항을 예측하고 대비해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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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학문의 길/조동일/지식산업사

우리학문의 길이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는 그래, 우리학문이 발전되어야지라는 그냥 막연한 생각만 있었고, 학문이 왜 발전되어야 하는지 우리학문은 무엇인지 지금까지 살면서 한번 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학문의 필요성과 목적 존재이유를 책과 기사로만 읽고 간접적으로 접해보기만 했기에,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완벽하게 받아들이기는 힘들었으나, 미약하게나마 의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처럼 교육의 위기가 생긴 이유는 학문의 위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자기들 제멋대로 교육정책을 바꾸는 것은 우선 정권유지를 위한 개편일 것이지만, 교육 받는 수험생과 학생들은 교육을 우습게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혐오스럽게만 느껴질 뿐이다. 이와 같은 문제가 생기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교육의 근본인 학문을 죽이고, 교육을 잘해야 한다고 하니 교육개혁의 목적의식을 상실해서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생으로서 대학이 지금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한번 생각해 보았다. 가장 우선은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학생들만 가르치고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 대학의 문턱을 낮추고자 입시 제도를 마음대로 바꾸고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역겨운 인간들의 어리석은 사고방식으로 인해, 대학이 학문을 하는 교육이라는 불변의 원칙을 흐리게 된 것이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대학에서 학문을 고급 지식으로 바꾸는 능력이 중요해진 것이지, 무자격자가 어려움 없이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하고 취직하기 위한 썩은 동아줄이 아니다. 또한 대학에서, 도서 이용에 관해서는 국가가 베푸는 혜택을 누리면서 소속 대학의 범위를 넘어서 연구하고 경쟁할 수 있도록 행정적 마련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교수님께서도 다른 대학에 위치한 책을 보기 위해 갔으나 해당학교 소속이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당했고, 한국과 일본의 고서를 포함한 서적을 다루는 가치관 차이도 충분하게 느낄 수 있었다는 사실을 들은 적이 있다. 교수가 소속 대학의 범위를 넘어서서 경쟁 하도록 하는 것이, 기존 재원과 인력을 활용하는 범위 안에서 경쟁하게 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또한 효과가 잘 나타날 수 있는 전략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학문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필수적인 일은 대학원생을 포함한 모든 학생들과 교수들에게 학문과 이론의 실용적 가치를 입증하고 그 의미를 깨우쳐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이론을 창조해 세계 학문의 새로운 길을 열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편법이나 임기응변이 아닌 철저한 논의를 바탕으로 한 대책마련이 필요하다. 반드시 선진국을 따라가야 한다는 주장은 제대로 된 발전에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 시대적, 지리적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선진국이 했으니 똑같이 본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그저 후진국의 창의성 고려 없는 특유의 방책을 반복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것을 고집하고 머물러 있다면 결국 우리는 그러한 학문과 방법을 선택하지 않게 될 것이고, 역사책의 작은 참고 사항으로 자리 잡아 우리 인식에서 서서히 잊혀버릴지도 모른다. 이 책은 주로 문학적인 내용에 중점을 두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이 분야만 한정적으로 제한되는 내용이 아니라 우리나라 학문 전체에 포괄적으로 적용되어야하는 하나의 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문을 해서 얻는 결과가 이론이라고 한다. 어떤 실증적인 학문이라도 논증한 사실을 종합해서 이론적인 일반화를 이룩하는 데까지 이르러야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론을 불신하고 사실 자체에 머무르고자 하고,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대상만 다루고 일반화를 하지 않으려 한다면 학문을 한다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아직 검증되지 않은 막연한 가설이 이론은 아니다. 가설을 논리적으로 검증하고 사실에 의해 입증해야 비로소 이론이 된다. 따라서 나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자신의 전문분야의 관점으로 연구하고 성과를 모으고, 같이 비판하고, 다시 다듬으면서 학문과 이론의 발전을 그릴 수 있다고 본다. 혼자 경험이 많다고 학문을 잘하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비판 과정을 통해 진실 탐구 의지를 기르고 정확한 탐구 방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학문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닌 토론과 대화를 통해 완성해나가며, 이를 통해 지식과 지혜의 생산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대학에서 이론 창조를 사명으로 하고, 강의 와 연구의 불일치 문제들을 해결하고, 학생들의 학문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게 된다면, 비로소 이 책에 나온 우리 이론 창조의 세계사적 사명을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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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는 어떻게 문명을 구했나/존퀘이조/황상익/메디치미디어/세상을 바꾼 의학의 10대 발견

 

 

한 가지 발견을 하기까지는 수많은 실패와 좌절이 동반한다. 그리고 이런 발명 이후에는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정확하게 상상하기란 힘들다. 페니실린처럼 수많은 발견들은 다양한 우연한 기회와 행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나 역시 언제나 발명을 위해 불편을 생각하고 고민의 시간을 보내곤 하는데, 내 발명과 생각이 후에 어떤 혁신으로 이어질지는 감히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 나를 더 흥미롭게 만들기도 한다. 새로운 발명을 비웃고 비아냥거리는 자는 그저 새롭게 다가오는 변화가 두려울 뿐이다. 이런 사람들은 새 시대를 받아들일 용기가 있는 자들을 절대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 든 생각이 있다. 우선 주변의 의심과 조롱을 버티고 나의 신념을 끝까지 지켜나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멘델은 수십 년간 자신의 업적을 무시하고 비난하는데도 결국 흔들리지 않고 이겨냈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잠시 과대를 하면서도 몇몇의 근거가 전혀 없는 낭설과 비난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나라면 과연 그렇게 긴 시간동안 주변의 비난과 불신에도 연구를 멈추지 않고 내가 목표한 바를 얻어낼 수 있을까. 특히 폐쇄적인 집단 안에서는 남의 공로를 인정하기 싫어하고 자신의 부족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수많은 의심과 조롱을 만들어 내곤 했다. 하지만 위대한 사람들은 이러한 부수적인 역경들을 잘 이겨내고 자신이 원하는 결실을 얻는 기쁨을 맛보았던 것처럼, 나를 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주위에 흔들리지 않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차근차근 만들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으로 든 의문은 나는 과연 기존의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질병이 주로 미아즈마를 통해서 전달된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세탁되지 않은 옷을 전달받거나, 오염된 식수를 먹어서도 병이 옮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새롭게 질병의 원인을 추론해낸 것을 보았다. 이를 통해 기존의 관념을 벗어나는 것은 정말 어렵지만, 이러한 과정이 있어야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낼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또한 언제나 일반적인 사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고자 노력하고, 때로는 엉뚱하게 사고의 전환을 시도해 보는 경험이 나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지막 의문은 콜레라의 시대에 채드윅과 스노우가 해낸 일처럼 시대적 상황의 위험을 무릅쓰고도 연구 지속할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한의대에 들어오기 전부터 나는 한의사가 되어 신종플루나 메르스 같은 전염병에 맞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치료를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해 보았다. 차라리 조금 더 안전한 곳에 남아 더 많은 사람들을 오래도록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겠다고 자답했었다. 아직까지도 내 생명을 희생해가면서까지 환자를 치료해야한다는 다짐에 이르지는 못했고, 그저 그러한 일을 했던 이전의 의사들에게 존경을 표할 뿐이다. 인생을 살면서 매순간 우리의 선택은 삶을 성공으로 이끌고 사회에 긍정적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어린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청진기를 발명하게 된 것처럼 다양한 사례들을 보면 그러한 기회에는 많은 우연과 운이 작용했다. 그 기회를 쟁취한 사람들은 모두 운의 중요성을 언급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업과 의료도 마찬가지로 나에게 다가온 행운을 거머쥘 수 있는 좋은 감각을 지니기 위해 많이 배우고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두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혁신이란 순수한 노력만이 아닌, 독특하고 명백한 것에 주의를 기울여 새로운 발견을 해낸 것이기 때문이다. 의료행위를 엄격한 기준을 지닌 전문기술인으로 격상시킨 히포크라테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앞으로 의사가 되어 갖춰야할 태도도 어렴풋하게 접할 수 있었다. 지금 잘 갖춰놓은 나의 가치관과 인성을 더 갈고 닦고, 더 많이 더 열심히 배우는 것은 필수적이자 기본적인 것이다. 여기에 표정에 적절한 신중함과 무게감을 지니고 적절한 기쁨을 조절해내는 것, 습의규격에 나온 환자의 생업과 경제수준을 고려하고 감사의 빚을 기억하게만 하는 등의 사소하지만 환자를 배려하고 의사로서 신뢰와 믿음을 얻을 수 있는 중요한 능력도 필요함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위대한 의학적 발견은 단순히 많은 사람을 구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행복한 삶을 주고, 문명을 구하고 궁극적으로 생각과 인식을 바꿔 세상을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피와 땀이 서려 있는 수많은 노력들이 빚어내려 했던 궁극적 목적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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