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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조르주캉길렘/여인석/그린비

 

책은 상당히 많이 전문적인 내용들이 있어서, 아직 잘 모르는 지식이 많은 나로서는 아주 난해하게 느껴졌고, 괜히 오해하여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은 것 같아서 이해되고 흥미가 가는 부분을 위주로 읽어나갔다. 철학적 개념이다 보니 두 가지 개념이 있을 때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들이 아무리 읽어도 같은 의미인 것 같고, 그 미묘한 차이를 찾지 못하겠는 경우가 있었다. 의학과 철학을 관련지어 설명하는 책들을 최근에 몇 권 읽었지만, 나는 의학에 형이상학을 융합해서 의학을 바꿔보려는 행동은 위험하다고 생각이 든다. 의학의 본질적인 부분은 순수한 학문성이 아니라 정상의 확립과 회복의 기술인 임상과 치료이다. 철학은 의학기술 발전 방향이나 속도를 조정하는 보조적 역할을 할 수 있을 뿐이지, 의학활동에 대해 규범적 판단을 내리거나 서로 차원이 다른 학문을 통합하려는 태도는 지양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의학의 방법과 성과들을 철학적으로 사색하는 점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나도 가끔씩 내가 보고 내가 인식하는 것들이 정말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오랜 시간의 교육과 사회 환경과 분위기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인지하고 사고하고 있는 것일까 의문을 가졌을 때가 있었다. 나와 방향은 조금 다를지라도 여기서 의도하는 내용들은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을 실체와 규범적 성질에 대하여 논의한 것 같았다. 현실에서 병원을 다니면서 수치에 의해 판단을 내리는 것을 보며, 나는 정상과 비정상, 건강과 질병은 의학에 있어서, 각각이 따로 존재하는 실체의 개념이 아니라 정상의 범위를 넘나드는 것에 따라 발생하는 불균형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했다.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한의학도 질병 발생을 전체적 조화가 깨진 불균형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나의 생각과 일치한 것 같았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감염되어 생기는 전염병을 고려하면 객관적 실체가 있어서 인체라는 문을 통해 들어온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몸의 체계가 무너져서 생기는 결핍증을 보면 조화와 불균형의 문제인 것 같기도 했다. 복잡한 인체의 작용을 단순하게 한 가지 이론만 선택하여 설명하기는 어려워보였다. 이와 달리 저자는, 생명체가 정상적인 생명과 병리적인 생명 사이에 설정하는 가치의 차이는 규범적인 것이며, 이러한 규범은 어떤 개체를 평가하여 교정을 가능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또한 독립적인 각각의 생명체와 환경은 정상적인지 여부를 따질 수 없고 상황을 정상적으로 만드는 것은 이들 간의 관계라고 말하며 불균형의 문제나 실체적 접근이 아닌 관념적 문제를 언급했다. 실제로 문제가 되지 않을지라도 이전의 사례를 통해 확률 상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면, 비정상으로 판단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로 생각된다. 이를 보면 의학은 평균적 정상을 객관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고유한 규범성을 인식하는 것이고, 의사는 환경과의 관계와 개체의 특이점 속에서 병리적인 것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반드시 요구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깡길렘은 정상의 개념은 자체로 객관적인 측정이 가능한 어떤 실체 개념이 아니며 병리적인 것은 정상적인 것의 일종으로 봐야 한다.’라고 주장한 것이 아닐까. 19세기의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의 관계에 대한 주장을 보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었는데, 의학을 질병에 대한 과학으로, 생리학을 생명에 대한 과학으로 간주하라는 베르나르의 말이 나에게 크게 다가왔다. 진정한 합리적 치료는 과학적 병리학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고, 과학적 병리학은 과학적 생리학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예과이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겠지만, 알고 안하는 것과 모르고 못하는 것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이런 생각의 기회를 가졌다는 것이 나에게 소중했다. 내용이 많이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렸지만,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주제와 전혀 생각 안 해봤던 사고방식을 받아들이고 고민해 보며 나의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책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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