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조르주캉길렘/여인석/그린비

 

책은 상당히 많이 전문적인 내용들이 있어서, 아직 잘 모르는 지식이 많은 나로서는 아주 난해하게 느껴졌고, 괜히 오해하여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은 것 같아서 이해되고 흥미가 가는 부분을 위주로 읽어나갔다. 철학적 개념이다 보니 두 가지 개념이 있을 때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들이 아무리 읽어도 같은 의미인 것 같고, 그 미묘한 차이를 찾지 못하겠는 경우가 있었다. 의학과 철학을 관련지어 설명하는 책들을 최근에 몇 권 읽었지만, 나는 의학에 형이상학을 융합해서 의학을 바꿔보려는 행동은 위험하다고 생각이 든다. 의학의 본질적인 부분은 순수한 학문성이 아니라 정상의 확립과 회복의 기술인 임상과 치료이다. 철학은 의학기술 발전 방향이나 속도를 조정하는 보조적 역할을 할 수 있을 뿐이지, 의학활동에 대해 규범적 판단을 내리거나 서로 차원이 다른 학문을 통합하려는 태도는 지양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의학의 방법과 성과들을 철학적으로 사색하는 점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나도 가끔씩 내가 보고 내가 인식하는 것들이 정말 있는 그대로 보고 있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오랜 시간의 교육과 사회 환경과 분위기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인지하고 사고하고 있는 것일까 의문을 가졌을 때가 있었다. 나와 방향은 조금 다를지라도 여기서 의도하는 내용들은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을 실체와 규범적 성질에 대하여 논의한 것 같았다. 현실에서 병원을 다니면서 수치에 의해 판단을 내리는 것을 보며, 나는 정상과 비정상, 건강과 질병은 의학에 있어서, 각각이 따로 존재하는 실체의 개념이 아니라 정상의 범위를 넘나드는 것에 따라 발생하는 불균형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했다.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 한의학도 질병 발생을 전체적 조화가 깨진 불균형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나의 생각과 일치한 것 같았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서, 감염되어 생기는 전염병을 고려하면 객관적 실체가 있어서 인체라는 문을 통해 들어온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몸의 체계가 무너져서 생기는 결핍증을 보면 조화와 불균형의 문제인 것 같기도 했다. 복잡한 인체의 작용을 단순하게 한 가지 이론만 선택하여 설명하기는 어려워보였다. 이와 달리 저자는, 생명체가 정상적인 생명과 병리적인 생명 사이에 설정하는 가치의 차이는 규범적인 것이며, 이러한 규범은 어떤 개체를 평가하여 교정을 가능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또한 독립적인 각각의 생명체와 환경은 정상적인지 여부를 따질 수 없고 상황을 정상적으로 만드는 것은 이들 간의 관계라고 말하며 불균형의 문제나 실체적 접근이 아닌 관념적 문제를 언급했다. 실제로 문제가 되지 않을지라도 이전의 사례를 통해 확률 상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면, 비정상으로 판단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로 생각된다. 이를 보면 의학은 평균적 정상을 객관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고유한 규범성을 인식하는 것이고, 의사는 환경과의 관계와 개체의 특이점 속에서 병리적인 것을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반드시 요구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깡길렘은 정상의 개념은 자체로 객관적인 측정이 가능한 어떤 실체 개념이 아니며 병리적인 것은 정상적인 것의 일종으로 봐야 한다.’라고 주장한 것이 아닐까. 19세기의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의 관계에 대한 주장을 보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었는데, 의학을 질병에 대한 과학으로, 생리학을 생명에 대한 과학으로 간주하라는 베르나르의 말이 나에게 크게 다가왔다. 진정한 합리적 치료는 과학적 병리학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고, 과학적 병리학은 과학적 생리학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예과이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겠지만, 알고 안하는 것과 모르고 못하는 것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이런 생각의 기회를 가졌다는 것이 나에게 소중했다. 내용이 많이 어렵고 시간도 오래 걸렸지만,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주제와 전혀 생각 안 해봤던 사고방식을 받아들이고 고민해 보며 나의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책이었던 것 같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사람을 구하는 집 제중원/박형우,박윤재/사이언스북스/조선, 새로운 의학을 만나다

몇 년 전에 제중원을 연세대와 서울대 병원이 자신의 뿌리라고 주장하며 싸우는 기사를 봤던 기억이 난다. 역사가 너무 재미없고 싫어서 제중원이 뭔지 관심이 없었기에 제중원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제중원이라는 서양식 병원이 조선에 가져온 새로운 의학이 미친 영향을 살펴 볼 수 있었다. 선교사들은 미신에 의존한 치료법과 사고방식을 고쳤다고 볼 수 있겠다. 그들이 내세운 가치들이 전부 옳았다고는 할 수는 없겠지만, 가난한 동양의 식민지에 도착한 선교사의 눈에 비친 민간요법들은 의미도 모호한 미신으로 보였을 것이다. 서양의술과 아직 보완이 덜 된 민간요법들은 분명히 차이가 존재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도 여전히 어디엔가 남아서 전해지는 배 아플 때 숯가루 먹기, 다래끼 난 눈에는 참기름 바르기, 벌에 쏘였을 때 된장 바르기 같은 전혀 검증 안 된 민간요법들을 보면 과거에는 얼마나 더 많은 위험한 행위들이 있었을지 쉽게 상상가지는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굶주림과 질병에 내몰린 동양 사람들에게 즉각적으로 효과가 나타나는 서양의술의 효과는 정말 귀신같았을 것이다. 여성간호사가 배출되고 여성들의 산부인과 치료가 이뤄진 것도 어쩌면, 동양과 다른 서양인들의 가치관이 반영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갑신정변 이후 초기 선교사들은 한의사가 민영익을 치료하는 것을 보았고, 그 중 알렌은 정말 한의사들의 치료가 효과가 있길 바랐다고 한다. 심지어 무당의 굿을 보면서도 미신이라고 무조건 무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나라의 전통과 문화가 기독교 신념과 위배되는 것이라도 처음부터 막무가내로 비판하지는 않은 것이다. 완전히 다른 가치관과 성장환경의 차이를 고려하고 존중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고 내적인 갈등도 많이 발생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나 초기선교사들이 활동하던 당시 상황을 고려했을 때 알렌의 한국 전래의 치병 방법과 한방을 인정한 태도와 성격은 정말 대단하고, 지금 같이 다양한 인종과 다른 문화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는 시대에 미국 선교사들의 희생정신과 삶에 대한 자세는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시기에 한국인들은 병원에 와서 진찰을 받고 수술을 하고, 치료비를 낼 때 그 의료행위에 대한 수가가 아니라, 의사에게 혜택을 주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처음에 이 내용을 봤을 때는 알렌처럼 똑같이 놀랐지만, 잠시 생각을 해보면 그 당시 의생들이 얼마나 혜택을 누리며 살았기에 그렇게 생각했을까 싶었다. 지금은 다들 당연히 의료수가로서 돈을 지불하는 것이라 여기지만, 그 당시에는 아직 그런 개념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쩌면 지금 우리가 당연히 여기고 있는 것도 시간이 흘러서 보면 불합리하고 말도 안 되는 것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조선 관료사회의 부패로 인해 파견 관리가 훨씬 늘어나면서, 제중원은 병원 예산 문제로 병원 운영이 파행을 겪었기에, 지속적으로 의학교육을 제대로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는 점은 정말 아쉬웠다 . 조금만 국가에서 신경 쓰고 제대로 운영이 되었다면 우리나라의 의학적 발전은 더 빠르고 아주 우수한 수준에 다가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제중원 설립의 숨은 목적은 개신교 선교와 미국 외교의 영향을 확대하려는 것으로 보였지만, 한국인의 세계관과 신체를 둘러싼 의식에 큰 변화와 영향을 주었고, 인간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드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제중원이 있어서 단순히 병을 치료해주는 기관이 아니라 국내 첫 의학교육과 고등교육을 실시해 우리나라 스스로 인재를 양성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왔던 것 같다. 또한 서양의학이 단순히 남의 의학으로 남아있지 않고 이 땅의 의학으로 토착화되고 발전하기 위해서 노력한 결과, 근대 서양의학이 더 이상 외래의학으로 남지 않게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알렌의 치료는 인종이나 종교나 이념을 초월하여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로서의 본분을 지키는 일을 했다. 나 역시 앞으로 나의 여러 지위에 대한 자신의 직책에 충실하게 임하기 위해 언제나 주의하고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며,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나의 여유를 베풀고 상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