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죽음을 선택할 권리/M, 스캇펙/조종상/율리시즈

 

이 책은 중반까지는 읽어도 계속된 저자의 불확실한 의견 때문에 안락사의 지지여부를 확실히 알 수 없었으나, 후반부에서 하나님의 생명을 스스로 끝낼 수 없으니,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하며 안락사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안락사 운동이 세속적 현상에서 생긴 것으로 보고, 영혼의 성장을 독려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고 싶지 않다. 영혼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고 느끼는 것들은 모두 구체적인 현실이지 추상적이고 고상한 개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책을 읽으며 공감하고 나와 같은 의견도 여러 번 나왔지만, 안락사를 선택하는 사람을 모든 것을 스스로 통제하고 떠나려는 사람으로 낙인찍는 것은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삶의 문제에 대한 고통을 이겨내면서 배우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저자의 생각이 완전히 틀리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 고통의 과정 속에서 얻는 배움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여기는 걸까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우리는 성인군자도 아니고 모든 것을 배우기 위해 살아가는 것도 아닌데, 얼마나 고귀한 배움이기에 그렇게 큰 고통을 감수하면서 까지 이겨내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저자의 말대로 죽음도 삶의 과정 중 하나인 것은 동의하지만, 고통을 피하기 위해 안락사를 자처하는 것이 자살과 같은 죄로 여길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완전한 종교적 신념에 휩싸여 글을 쓴 것만 같았고, 하나님이 주신 육체라는 그 믿음의 이유 때문에 인생의 종착지점이 망가질 필요는 없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선택하는 것일 뿐이다. 감히 타인의 인생전체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다.

죽음에 대한 생각이 시대에 따라 계속 변화해 온 만큼 앞으로도 죽음과 안락사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변하리라 믿는다. 현재 안락사에 대한 논의는 옳다 그르다 이분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나는 그 경계는 아주 모호해서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분명한 것은, 난치성 질환의 치료과정이 죽을 만큼 고통스럽고 현재 상태가 극히 치명적이라면 인위적인 생명 유지 장치와 과도한 의료조치를 중단하는 것도 정당화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당연하게도 위험한 비탈길에서 말하는 바와 달리 조력자살을 하나의 권리로 인정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자가통증조절기처럼 내 몸의 문제를 컨트롤할 수 있는 능력이 자신에게 주어져 있다는 생각은 환자에게 커다란 심리적 안정감을 심어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PCA가 안 되는 약물 사용에서 환자의 심리적 불안감과 함께 고통이 배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치명적 고통의 환자에게 의사의 역할은 완치가 아니라면 적어도 통증은 줄여줄 수 있어야 하지만, 관료제에 따라 대형병원에서는 아무리 아프고 죽어가도 원무과부터 차례대로 접수하라고 하며, 고통스러워 진통제를 요구하는데도 아직 주사시간이 아니라며 그냥 지나쳐간다. 의사의 입장에서 안락사, 보호자의 입장에서 안락사, 환자의 입장에서 안락사는 모두 다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환자의 의사를 존중하는 것이라 본다. 생사를 판단할 때는 감히 다른 사람의 삶의 질을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 더욱이 환자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육체적인 문제만을 바라보며 결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의식이 없어서 말을 하지 못할 때를 대비해 생명의향서를 쓴다한들 마지막 선택의 상황에서 실제로 그 사람의 선택이 변함없을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또한 가족과 의사의 뜻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기에, 이 종이가 나의 선택을 100% 지지해준다고 볼 수도 없다.

말기 암에 대한 방사선 치료와 화학요법은 과도한 조치,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폐해지고 이러한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얻게 되는 결과는 그리 크지 않다. 완치를 위한 고통스런 과정이라면 견뎌내고 받아들일 사람들은 많겠다만, 일시적인 효과뿐이라면, 그저 환자를 통해 매출을 내기 위한 대형병원의 역겨운 만행이라면, 환자는 수명연장 10%와 거대한 고통을 정말 바꾸려고 할까. 안락사에 대한 토론도 하고 인간 존엄사에 대한 기사도 많이 읽어봤지만, 책을 읽으면서 실제로 자신의 경험사례를 나열한 것을 보며 새롭게 생각해보고 느끼게 된 점도 있었다. 다양한 형태의 죽음을 지켜볼 수 있었고, 나의 마지막은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한번 상상해보면서, 사고사가 아닌 한 사랑하는 사람들과 죽기 전에 서로 인사하고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령화 시대에서 우리의 건강은 마냥 지속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건강함을 유지하기 위해 건강한 식습관을 만들고 꾸준한 운동을 하며 내 몸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호상이라는 말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사용될 것인지 아니면 안락사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이 바뀌면서 시대 흐름에 맞춰 다르게 사용될 것인지 궁금하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